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 이병기(李秉岐) -
서늘한 가을 초저녁에 바람을 쐬려 뜰 앞에 홀로 나와 서녘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나타난 산뜻한 초사흘달(초승달)과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본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눈잎에 펼쳐진 듯 서경적(敍景
的)이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가을의 정취(情趣)가
분수(噴水)처럼 뿜어나오는
서정적(抒情的)인 시조라 생각한다.
세상살이 번민(煩悶)을 흘흘 털어내고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검푸른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을 한 동안
헤아리다가 어느새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별나라 뜰 앞에
서있었으리라.
내일(9월 23일)이 추분이다.
저녁에는 제법 바람이 서늘하고 하늘도 꽤 높아졌다.
초저녁 하늘 한 가운데 나온
반달을 바라보며 맑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자.
이 가을에는 부디 부질없는
속앓일랑 하지말자.
이 시조를 가사로 한 이수인의 가곡 '별'이 애창되고 있다.
가람 이병기(1891~1968) : 독립유공자, 교육자, 국문학자, 시조시인이며 서울대 교수,
학술원 회원, 국방부 전사(戰史)편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문화포장(褒章)과 학술원
공로상을 받았으며 건국훈장 애국장(愛國章)이 추서(追敍)되었다.
저서로는 국문학전사(全史),
국문학개론, 가람문선(文選),
가람시조집 등이 있다.
이한기(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