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동물이 된다면서요?”라고 묻는 친구가 있다. “사람이 어떻게 동물이 될 수가 있단 말이야?”하고 따지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불교는 형편없는 종교야!”라고 비꼬기도 한다.
기독교는 다르다. 야훼 하나님은 진흙을 빚어서 하나님의 형태로 인간을 만든 후, 코에다 하나님의 입김을 불어넣어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말(언어)로서 “동물아, 생겨라”해서 동물이 만들어졌다. 동물은 인간하고 DNA가 다르다. 한 번 인간이면 영원히 인간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도 인간이고, 지옥에 가도 인간이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면 먼저 돌아가신 조부모, 부모 및 친구들도 만난다.
사람은 동물(닭, 소, 돼지, 물고기)과 채소를 먹는다. 먹었던 음식 중에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진다. 인연 따라 정자하고 난자가 만난다. 배아·태아·갓난아이가 된다. 자라서 어른·노인이 된다. 사람이 ‘흙’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음식’에서 만들어지고 그리고 죽으면 동식물의 ‘음식’으로 되돌아간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혀 벌레의 밥이 되든가 혹은 풀의 거름이 된다. 인간과 동식물은 서로 연관되어 얽혀있다. 인간은 동물의 DNA(유전인자)를 갖고 있다.
불교에서는 ‘죽음’이라는 게 없다. ‘변화’만 있다. 갓난아이가 태어난다. 갓난아이는 변해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된다. 갓난아이가 죽었기에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갓난아이는 죽지 않았다. 단지 어른으로 그리고 노인으로 변해진 것뿐이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하는 데 죽은 것이 아니다. 단지 삶이 죽음으로 변했을 뿐이다.
인연이 닿으면, 죽음이 또한 삶으로 변한다. 업(Karma)에 따라 하늘나라, 인간, 동물 혹은 지옥에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나서 설령 부모나 친구들을 만난다고 해도 전생에 대한 기억이 전연 없기에, 그리고 얼굴이나 생김새가 판이하게 변해있기에, 결코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불교에서는 선한 마음과 선한 행위는 좋은 업을 만든다. 사악한 마음과 나쁜 행위는 나쁜 업을 만든다. 업이 좋으면 죽은 후 하늘나라나 혹은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업이 나쁘면 지옥이나 동물로 태어난다.
친구야, 자네는 기독교이니까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에, 마음 푹 놓고 여생을 살겠구나. 나는 불교이기에 계율을 지켜가면서 착하게 살아가고 있기에, 나도 죽으면 좋은 복을 많이 갖고 인간이나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 같다. 친구여, 여생을 착하게 잘 살자꾸나.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정신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