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갈 때 기고만장 뽐내지 말고, 역경에서 의기소침, 기죽지 말라는 이야기는 자라면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른들로부터 따갑게 들어왔다. 하지만 실천은 글쎄?
우리 인간들 이야기 전에 버려진 유기동물 보호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요행으로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무슨 이유든 간에 ?기다 시피 보호소에 되돌아온 동물들은 완전히 의기소침, 우울증에 걸린 그야말로 “기가 팍 죽었다!”라고 표현된다고 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증가일로의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도를 지나쳤다고 할 수 있겠다. ‘베이비 박스’가 있어 다행히 도움의 손길이 닿는 영아들도 있으나 대부분 아무렇지도 않게 어른, 아이 없이 소위 유기된(disown) 사람들은 인간이기를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기’는 하늘나라에 이미 가버린, ‘껍데기’일 뿐이라 하겠다.
고아원에서 어느 가정에 입양이 잘되어 좋은 결실을 맺은 소식도 가끔 듣지만 많은 경우 입양이 잘못되었거나 고아원으로 되돌아온 경우 이들의 ‘기’는 나락으로 떨어진 지 너무 오래고 심각하다하겠다.
이보다는 그래도 나은 경우이긴 하나, 우리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들 중 하나의 예를 들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 어머니의 말씀, “집안의 여인네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가난도, 위협도 아닌 가정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남정네들이 일터에서 부당한 고용주나 상급자들의 횡포에 기죽는 것”이라면서, 내 남편, 내 오빠들이 기죽지 않는다면 무슨 어려움인들 감당 못할 리가 있겠는가.
기죽는 것, 기죽지 않는 것! 이 얼마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늘 심각한 정신력의 싸움인가.
개인적인 일을 말한다면, 넉넉지 못한 경제적 형편이었으나 모친께선 늘 자식들의 안위 걱정은 물론 혹시 밖에서, 학교에서 자식들이 ‘기죽지 않을까’ 걱정을 달고 사신 것 같았다. 그래서 없는 돈에도 학교 월사금은 제일 먼저 납부하는 우리들 형제자매였던 생각이 나며 학교 과외활동에도 될수록 참여하도록 마음을 써주셨다.
일례로 필자가 비교적 자신 있는 것 중 하나가 캠핑 등 야외활동인데 이것은 중학교 시절 소년단 활동의 덕택이 아닌가한다. 단체 활동, 친우애, 양보와 협력, 희생 등 소년단의 지향 목표는 인생의 한 지표로서 대단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지금은 학교 폭력 소식이 자주 세간에 오르내리지만 아주 오래 전엔 학교의 소위 ‘어깨’들이 체력 단련을 하여 단단해진 몸매를 자랑하며 주로 다른 학교의 ‘어깨’들과 체력과 담력 패권을 하는 패싸움 정도가 고작이지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필자도 유도부에 가입해 체력을 단련하니 주위 어깨들조차 내게는 접근하질 않아 기죽을 일이 생기지 않아 학교생활이 편했었다.
세월은 흘러 인심도 변하고, 학교의 분위기가 바뀌어도 보통 바뀐 게 아닌 성 싶다. ‘아빠 찬스’, 무슨 찬스 등등 생소한 용어가 상시화 된 세상인 것 같다. 어찌 약한 학생 동료들을 괴롭힐 수가 있단 말인가? 학교 교육은 지식 전수 이전에 도덕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 까?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생존경쟁인가? 아니면 기득권의 철저한 보존과 방어를 위한 배타적 행패인가? 약한 자들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구도에서 시합을 하라고 링에 올리려는 의도가 타당이라도 한가. 자신의 힘으로 해결 못하고 외세 의존적, 부모배경 의존적인 나쁜 행태가 횡행하는 한 미래는 없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일제가 “한민족의 기를 꺾어놓고자” 얼마나 극악무도 했는지를 현 세대들이 알고나 있는지.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