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 범죄는 과연 예방할 수 있는 것일까.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흉악 범죄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놀랍게도 영화 속 2054년 미래사회는 살인과 같은 흉악 범죄가 발생할 수 없는 범죄 청정 도시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살인 등 흉악 범죄가 발붙일 수 없는 것은 범죄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탐지해 범죄 행위 직전에 현장에서 그를 체포하는 프리크라임 특수 경찰들 덕택이다. 탁월한 능력으로 범죄 예정자를 추적하고 체포하는 프리크라임 팀장으로 등장하는 배우 톰 크루즈의 연기는 언제 봐도 일품이다. 영화 스토리의 개연성에 아쉬움이 남는데, 흉악 범죄를 미리 예언하는 시스템이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하기보다는 샤머니즘에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일상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연쇄 흉기 난동 사건은 우리 사회에 몇 가지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이상 동기 범죄가 결코 미국·유럽 혹은 일본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재학생 2명의 총격난사로 학생과 교사 등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비롯해 콜럼바인 사건의 모방 범죄로 여겨지는 2007년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일본에서는 2001년 8명의 사망자를 낳은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이후 2008년 20대 남성이 도쿄 아키하바라 상점가로 트럭을 몰고 흉기를 휘둘러 7명이 숨진 아키하바라 사건, 2016년 19명이 사망한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사건 등 대규모 살상의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고 이를 모방하는 범죄 예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병폐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와는 다른 차원의 이 같은 사회적 일탈 현상은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마비시킬 수 있는 공포와 두려움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훨씬 더 크다. 연쇄 범죄가 일상화하면 사회에 대한 불신과 공동체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국가 기관과 공권력에 대한 무용론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쇄 흉기 난동 사건은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을 요구한다. 미국과 일본은 콜럼바인 사건과 아키하바라 사건 등 이후 배경과 원인, 근본적인 방지책을 찾기 위해 국가와 범사회 차원의 진지한 노력에 나섰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지역 공동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대학과 연구소들이 나서서 대량 살상 등 흉악 범죄의 다양한 원인과 예방 대책을 찾기 위한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성과로 이상 범죄를 일으키는 공격성에 관한 사회심리학적인 다양한 진단과 해법들이 꾸준히 축적되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력성과 성별의 상관성, 미디어 속 폭력과 실제 폭력과의 관계는 우리가 예상하는 답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심리학 연구 결과들은 흉악 범죄를 일으키는 공격성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할 경우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데 실패하게 되고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좌절감이 흉악 범죄 등 공격 행동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에 연구자들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보다 덜 가졌다고 느끼거나, 자신과 비슷한 사람보다 더 적게 가졌다는 상대적 발탁감은 절대적 박탈감보다 좌절과 공격적 행동을 할 가능성을 더 높인다.
잇따르는 흉기 난동에 대해 정부는 강력한 처벌 방안들을 언급하고 있다. 사법입원제 도입 목소리도 나온다. 여론에 떠밀려 설익은 진단과 해법들을 임시방편으로 던지고 잊어버린다면 콜럼바인과 아키하바라의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똑같이 재연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사회병리적인 무차별 살상 범죄의 기저 원인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홍병문 서울경제 여론독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