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채 금리의 상승이 시장의 뇌관이 되고 있다.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긴축이 한창일 지난해 10월 국채 10년물 금리가 4.3%를 넘기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을 때가 정점이라고 여겨졌는데 이제와서 이를 돌파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달 들어 기술주를 중심으로 조정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채권 금리 상승의 영향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신용평가사 피치의 이달 초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항 조정이 채권 시장에 매도세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이 하향되면 조달 금리가 올라가는 등 전반적인 국가 경제 활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미국이 보증하는 국채의 자산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정부 인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피치의 결정이 불러올 여파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채권 가치 하락의 진짜 원인은 다른데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에 국가 부채 관리 방향을 조언하는 차입자문위원회(TABC)는 이달 초 연방 정부가 그동안 단기물 위주로 발행했던 국채를 하반기에는 장기물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모든 자산의 가치는 공급과 수요에 영향을 받는다. 장기 국채가 시장에 더 풀릴 것으로 예상되면 그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채 금리가 지나치게 움직이는 측면도 있다. 이는 장기채 가치가 하락하면 큰 피해를 보는 투자자들이 헷지를 걸어놓은 영향으로 보인다. 장기물 국채는 연기금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다량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선물 시장에서 금리 상승에 숏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채를 포함해 모기지담보부증권(MBS) 금리 상승(가치 하락)으로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고려하면 이들에게 채권 헷지는 꼭 필요한 보험인 것이다.
이는 중앙은행인 연준이 장기채 금리 상승을 더 용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FRB 입장에서 채권 가격이 더 떨어져서 SVB 파산과 같은 일이 더 벌어지는 것은 악몽 같을 것이다. 또한 FRB는 재무부의 파트너로서 정부의 국채 발행을 시장에 안착시켜야 할 의무도 있다. 아마 지금 옐런 장관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함께 장기채 금리 하락을 위해 협의하고 있을 것이다.
연준은 채권 가격 안정을 위한 카드도 보유하고 있다. 당장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고 활동을 재개시한 위원들이 전보다 긴축 발언의 수위를 낮추면서 시장에 금리 안정 시그널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단기채 금리 만큼은 아니지만 장기채 이자율 역시 기준 금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향후 기준 금리가 낮아질 것이라는 신호 만으로도 국채 금리는 안정될 수 있다. 다만 연준에는 아직도 기준 금리가 제약적인 수준이 아니라고 보는 위원들도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또 다른 카드는 연준이 지금 매달 진행하고 있는 양적긴축(QT) 금액을 낮추는 것이다. FRB는 지금도 매달 950억달러 수준의 QT를 하고 있는데 이는 장기채 시장에서는 매도 물량이기 때문에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QT를 중단하기는 힘들더라도 금액만 일부 조정해주면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줘서 장기채 금리 하락(가치 상승)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돌아서 다시 물가가 됐다. 연준이 금리 안정 시그널을 주고 QT 금액을 낮추려면 지금 진행 중인 디스인플레이션이 유지돼야 한다.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도리어 금리를 더 올려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재출현하면 연준은 금리를 더 올려야 하고 이에 따라 채권 금리도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금리의 역습은 금융시장 투자자들 뿐만이 아니라 거시 경제 안정을 유도하려는 재무부와 연준에게도 마지막 숙제로 남게 됐다.
<이경운 LA미주본사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