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근래에 이르러 크리스천의 신앙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는 분들이 있다. 함께 헌신했던 성도들을 환송하는 예배가 부쩍 잦아지고 있는 현실에 전도서 기자의 신앙고백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4)
무엇이나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전 3:2-17)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을 가거니와”(전 3:20)
인생은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으니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시 103:15-16)
시편 기자는 이 세상의 영화가 어느 한순간에 사라져 가는 덧없음을 탄식하고 있다. 인생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깨닫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현실적인 삶의 긍정적인 의미를 캐는 노력조차 헛되다는 것을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다.
어제 오후 이ㅇㅇ 전도사님의 충격적인 부음을 받고 한동안 망연자실하였다. 이 전도사님이 어느 한순간에 안타깝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들의 곁을 떠났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분을 부르시는 깊은 뜻을 우리의 영성이 흐려져 알 수가 없다. 이 전도사님의 환대의 삶은 예배위원으로서 사역을 담당할 때 친절과 겸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었다. 언제나 환한 표정의 웃음이 넘치는 모습은 선한 인품과 삶의 품격이 빛을 발했다.
예전에 주일날이면 반갑게 다가와 열정적으로 포옹하며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던 자애로운 모습이 마냥 눈에 선하다.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도움을 주시는 마음 넉넉한 분이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으로 삶 속에서 배려와 헌신으로 섬김의 사명을 담당해 왔다. 늘 맑은 웃음이 가득했던 전도사님과 나는 동년배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깊은 정이 들었다. 만날 때는 마음이 한없이 편안하게 느껴지던 분이었는데 어느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지난 봄에 이 선교사님의 아내이신 기도의 사람 C 목사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서로 안부를 묻고 반가움에 목소리가 친근감으로 희열에 들떠 있었다. 나의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보청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둘루스 지역 Z 마트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기쁜 소식에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고 애썼다.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하고 3년 만에 만나는 기쁨에 넘쳐 서로 얼싸안고 어쩔 줄 몰랐다. 뜻밖의 선물인 보청기를 받아보는 순간 감탄사와 함께 고마움에 할 말을 잃었다. 목사님 전도사님 두 분이 시무하는 교회의 강ㅇㅇ 장로님께서 선물하신 보청기는 가격과 성능도 우수한 제품이어서 고마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말씀이 내내 가슴을 훈훈하게 하여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감사한 마음을 안고 헤어지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시무하는 교회로 인사차 찾아뵙기로 약속을 했었다. 최근에 속히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내 찾아뵙지 못했다.
지난 주일(7월 23일) 저녁 이 전도사님의 갑작스러운 부음에 억장이 무너진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내내 오열했다. 그날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다니… 고인께 헌화하며 묵념한 후 잠자는 듯한 평화스러운 모습에서 크리스천의 맑은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향년 79세 주님과 함께한 맑으신 성품의 일생은 아내 되시는 목사님을 받들어 신앙의 겸손을 실천한 귀감이 된 분이다. 이ㅇㅇ 전도사님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의 현장에서 자신을 낮추어 섬김의 삶의 본이 되는 하나님의 귀한 사역자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의 세계에서 영면하게 된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목이 메어 찬송하면서 크리스천의 고귀한 정체성을 지니셨던 경건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 이웃을 환대하는 삶에서 부르심의 세계로 옮기신 전도사님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