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여성의 낙태권 보장 판례를 기각한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공화당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어떨까? 공화당 의원들은 말 그대로 어려움에 처한 산모와 그들의 어린 자녀로부터 음식을 빼앗아가려한다.
공화당은 이번 주 하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연례 농업지원법안에 ‘여성, 영유아 및 어린이 특별 영양보조 프로그램’(WIC: Special Supplemental Nutrition Program for Women, Infants and Children) 예산 삭감 조항을 포함시켰다. 농업지원법안은 농촌개발을 위한 연방정부의 무상지원과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저리 융자 프로그램 제공을 골자로 하는 지출법안이고, WIC는 저소득층 가족들에게 영양 보충 식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WIC는 정부의 많은 보조 프로그램들 가운데 ‘투자효율성’이 가장 높지만 그 가치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WIC는 저소득층에 속한 임신부, 갓 출산한 여성과 유아 및 어린 자녀들의 영양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1970년대에 마련됐다.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푸드스탬프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월 지원금 한도 내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식품을 거의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데 비해 WIC는 출산 전후의 여성과 만 5세까지의 자녀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영양식품으로 구입가능품목을 제한한다. 정부당국은 정기적이고도 과학적인 검토를 통해 이들이 꼭 필요로 하는 식품을 법으로 지정한다.
WIC는 (예를 들어 걸음마 단계인 아이에게 l개월간 최고 열두 개의 계란 섭취를 권하는 등)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영양식품 식단을 뽑아낸다. 이와 함께 모유 수유에 관한 상담과 약물남용 방지 프로그램 등 임신부와 산모를 위한 건강 및 사회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거나 제공한다. 말하자면 WIC는 부유한 국가의 정부가 저소득 가구의 어린이와 산부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건강지원 프로그램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지난 수십 년 간 WIC는 공화, 민주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를 받았다. 1997년 이후 의회는 WIC 연간 예산을 단 한 번도 삭감하지 않았고, 수혜 자격을 갖춘 신청자는 빠짐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브루킹스 인스티튜트 연구원인 로버트 그린스타인에 따르면 어느 당이 백악관을 접수했건, 공화당과 민주당이 의회를 양분했거나 심지어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동시에 장악했을 때조차 정부는 흔들림 없이 WIC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사실 경기침체와 예상치 못한 식품가격 급등으로 배정된 예산보다 더 많은 기금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조차도 의회와 연방 농무부는 자격을 지닌 신청자 모두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처럼 확고한 WIC 지원의지가 최근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예산 및 정책우선순위 연구센터는 공화당이 장학한 하원의 2024 회계연도 농업지원 법안이 통과될 경우 530만 명의 어린이와 임신부 및 임산부가 WIC 수혜자격을 상실하거나 혜택 축소를 겪을 것으로 추산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460만 명의 기존 가입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축소된다.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의 추천에 따라 지난 2021년 확대됐던 과일과 야채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산부족으로 수혜자격을 충족시킨 신청자 65~75만명의 프로그램 신규가입이 불허된다. WIC 프로그램 신규가입을 신청한 취약가정에 혜택을 제공하지 않고 대기자 명단에 올린다는 하원의 계획은 반세기만에 처음 나오는 조치다. 게다가 법안이 발의된 타이밍이 좋지 않다.
연방대법원의 돕스(Dobbs) 판결에 하원 농업지원법안 발의자인 메릴랜드 출신의 하원의원 앤디 해리스를 비롯한 공화당의원들은 일제히 환호했으나 자녀 부양준비가 안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선택할 수 없게 된 수천 명의 임신부들은 충격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최근에는 전국적인 유아식 부족현상까지 발생했다. 신생아를 둔 가정마다 유아식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와중에도 (해리스를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은 이같은 위기상황을 바이드노믹스를 비난하는 정치적 선전물로 이용한다.
물론 인플레도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치솟은 밥상 물가로 어려움을 겪자 공화당은 “인플레를 잡으려면 정부지출부터 과감히 줄여야 한다”며 물가고를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 주장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늘 그렇듯,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말보다 행동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공화당이 WIC 자체에 대한 반감, 혹은 빈민을 괴롭히려는 의도에서 프로그램 축소를 제안한 것이 아니다. 단지 공화당이 갖고 있는 정책 우선순위가 민주당의 순위와 다를 뿐이다. 공화당은 채무한도 현상에서 합의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비국방부문 지출 삭감을 밀어붙이기로 작심한 듯 보인다. 공화당 스스로 좁게 설정한 예산 테두리 안에서 국경 안보 등 그들이 원하는 선순위 프로그램을 지키려다보니 아무래도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에 칼질을 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원 공화당이 빈민가정에 태어난 아기나 이들의 엄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다.
여기서 비비꼬인 역설이 끼어든다. 만약 공화당의 우선순위가 재정 적정성이라면, WIC는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이다. 입수가능한 여러 연구자료에 따르면 WIC에 사용되는 1달러는 기타 정부지출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1달러보다 더 많은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임산부와 유아의 영양을 지키기 위한 투자는 조기출산 감소, 신생아체중 증가는 물론 유아의 정신 및 신체발달 개선과 밀접히 연관되어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WIC 예산삭감이 책임있는 재정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리는 정책적 실수를 범하고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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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