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푸른 솔 더불어그 향기 더욱 은은해
무지개빛 꽃 무늬 사랑에 탄다
밤마다 별들이 빛을 모아 꽃잎을 새기고
그 맑은 웃음 소리
그 영혼의 빛깔
신비한 신의 숨결
잠자는 내 영혼 흔들어 깨우네
7월의 분꽃에는
내 어머니 냄새가 묻어 있고
고향 집 장독대 옆에
고즈넉히 피어 있던 내 어머니 꽃
까만 꽃씨를 깨어서 분을 바르시고
시집오셨다는 어머니 사랑 이야기
새 색시 순정 못내 수줍어 밤에만 피는 꽃
어느 힘센 장사가 꽃잎을 열수 있나
오직 사랑만이 꽃잎을 여네
밤하늘 은하수 꽃길에
그리운 딸 위해 영혼의 꽃씨 키우시다가
7월의 분꽃으로 딸을 찾아오신
내 어머니를 닮은 꽃
''얘야! 너무 애쓰지 마라, 세월이 잠시다''
여전한 그음성, 영혼의 맑은 웃음
어머니 젖내음이 꽃향기 되어
밤을 흐른다.
매년 홀로 피었다 지는 들꽃 마을을 홀로 서성이며 20년 전에 쓴 분꽃 시를 다시 읽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분꽃 밭을 홀로 서성이며 하늘 향해 별밭을 서성인다. 밤이면 하늘이 열려 아주 가까이 은하수 꽃길 사이
곱게 피어 있을 내어머니 분꽃 마을을 서성이며 가끔은 세파에 시달린 나에게 다정히 말을 걸어오신 내 어머니 음성이 들린다.
''애야! 너무 애쓰지 마라, 세월이 잠시다'' 분꽃은 밤에만 피는 꽃이다. 그 꽃향기가 꼭 어머니 젖내음 같아 늦은 밤 어머니 젖내음에 젖는다.
40년을 한집에 덕분 홀로 피었다지는 들꽃들의 향연은 내 생애 그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영혼의 향기다.
분꽃은 마디 마디가 일손에 굳어진 내 어머니 손을 닮았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 장독대 옆에는 분꽃이 피어 있고 솥뚜껑을 걸고 녹두가루를 섞어서
찰떡 문지를 만들어 주시던 내 어머니를 분꽃 마을에서 만난다. 바위가 일품인 석산동 분꽃 마을에서 내 어머니 품에 안기듯 모녀의 사랑의 숨결이 흐른다.
작년에 몇년을 찾아 두었던 바윗돌을 옮겨와 나의 뜰엔 식구 늘었다.
침묵의 바위는 솔과 어울려 서로 화합하고 들꽃 더불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맑은 바람 소리
더불어 침묵의 향기는 내 영혼에 한 폭의 묵향이다. 바위 사이 솔씨가 떨어져 이 무더위에도
살아있는 작은 생명이 내겐 기쁨이기도 하다 .흙으로 덮어주며 불처럼 달아오른 바위 틈에서
생명을 키운 작은 솔이 왠지 짠하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전나무는 더욱 푸르름을 본다'는 논어의 말처럼
불볕 돌덩어리에서 그 작은 솔의 생명이 아침이면 나를 보고 빙긋 웃는다.
''여수 동좌'' ''그 누구와 함께 마음을 같이 하라'' 세상이 하… 시끄러워 고적한 날에 솔 사이를 거닐으며 그 맑음에 마음 담근다.
푸른 솔 바람소리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맑음이요, 그리움 안고 찾아온 내 벗이다. 잠을 잃은 밤이면 분꽃 마을을 서성이며 그리움 안고 찾아오신 내 어머니 그리움으로 마음 설렌다.
이 모두가 석산동 돌산 아래서 40년을 '돌산 지기'로 살아온 은혜가 아닐까 싶다.
내 고향 전남 강진에 귀향오신 '다산 정약용 선생님'' 그 기암 절벽 바위산에서 그 기를 조금이라도 받은 것이 아닐까…
그 토양의 흙은 그 사람을 만든다. 하늘이 열리어 우주의 흐르는 기… 그 기를 받아야 하늘이 열리고 우주의 기별을 들을 귀가 열려야 큰 뜻을 이룰 수 있다.
우주, 사람, 땅은 그 기의 흐름이 하나다.
다산 초당 그 흙을 어루 만지며 자란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다산은 외로움을 달래시며 '정석'(丁石)이란 글을
바위에 새기시고 그 청빈한 인품으로 '목민 심서' 등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하신 그 어른의 높은 인품과 학문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까.
다산은 시를 '언지'라 하시고 '' 자기가 비굴하면 아무리 고상한 언어를 수사해도 시를 쓸 수 없다''하셨다. 시는 자신의 마음이요 인격이라 하셨다.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어른의 혼이 살아 내 영혼을 다시 일깨운다.
''푸른 파도 소리
하늘 빛 맑음
청포 두루마기 입으신
어진 선비님
흙속에 묻힌
정직한 선비의 마음
''내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로지 맑은 바람 뿐이요,
나와 마주 앉은 이는
차와 밝은 달 뿐이라''{ 다산의 다시 중에서 }
자연속에 묻혀 '' 유유 자적'' 학문의 세계에 묻혀 사신 옛 스승
다산의 큰 업적을 다 헤아릴수는 없지만
들꽃 사이를 거닐으며 그리움 남기고 가신 옛 어른의 맑은 혼이 솔바람 소리에 묻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