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시론] 웃으며 지옥에 뛰어든 ‘임금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7-26 13:28:05

시론,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윤여춘(전 시애틀 고문)

꼭 반세기 전의 7월도 올 7월처럼 무더웠다. 신혼 초였던 나는 차창 밖에서 떨떠름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아내를 뒤로하고 판문점으로 향했다. 공동경비구역의 군사정전위원회 퀀셋(가건물) 회의실을 보무당당하게 걸어 3·8선을 넘은 후 북한측 판문각으로 들어가 다과를 대접받았다. 천장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는 일본제 히노(Hino) 버스를 타고 5시간 넘게 평양으로 가면서 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당당하게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는 ‘행운’을 얻은 것은 당시 평양에서 열린 제7차(마지막) 남북 적십자회담 한국대표단을 수행한 기자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판문점이 관광객들에 개방돼 누구나 갈 수 있다. 특히 2018년 문재인-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무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판문점을 임의롭게 여긴다. 하지만 정전위 퀀셋을 가로지르는 3·8선을 넘는 것은 여전히 금기다.

지난주 23세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등병이 나처럼 걷지 않고 뛰어서 그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갔다. 유니폼 아닌 청바지 차림이었다.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판문점에 들어와 퀀셋 근처에 서 있다가 갑자기 “하하하”하고 웃으며 북쪽으로 내달렸다. 돌발행동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도피 행각이다. 깜짝 놀란 미군 및 한국군 경비병이 추격했지만 그는 이내 판문각에 도달해 사라졌다.

킹은 문제병사로 알려졌다. 2년 근무하고도 ‘쫄병 중의 쫄병’인 이등병이다. 한국인을 폭행하고 ‘Fxxx’라는 쌍욕을 했고, 한국 경찰차량을 발길질로 파손해 선고받은 500만원 벌금형을 48일간 감방살이로 때웠다. 이번에도 불명예제대 절차를 위해 본국송환 명령을 받고 공항의 탑승구까지 갔다가 호송인들이 돌아가자 여권을 분실했다는 핑계를 대고 공항을 빠져나왔고 이튿날 판문점 관광단에 합류했다.

킹의 판문점 월북이 해프닝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6년 전엔 북한군 오청성 하사가 북측 경비병의 총격을 받아가며 구사일생으로 월남했다. 그는 킹과 반대로 판문각 쪽에서 자유의 집 쪽으로 내달리다가 북한군 경비병에게 5발을 총격당해 쓰러졌고 한국군 경비병들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 구조했다. 헬기에 실려 서울로 이송된 오 하사는 총상분야 최고권위자인 이국종 교수의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가장 극적인 판문점 월경 드라마는 1967년 이수근 사건이다.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은 미군측이 대기시켜 둔 세단에 올라 북한군 초소를 돌파했다. 남북 경비병들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그는 1969년 위조여권으로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가다가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체포됐다. 그 해 처형당한 그는 2018년 사후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2중 간첩혐의를 벗었다.

킹이 판문점을 포함한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월북한 첫 미군은 아니다. 이미 이수근 사건 전에 4명이 탈영해 각각 북으로 갔다. 킹처럼 징계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맨 마지막으로 1965년 월북한 찰스 젠킨스는 월남전에 차출되지 않으려고 탈영했다. 납치돼온 일본여자와 강제 결혼해 두 딸을 낳은 젠킨스는 40여년만에 가족과도 상봉했고 육군당국에 자수해 30일 복역으로 탈영 죄를 면탈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젠킨스는 월북 후 먼저 온 3명과 단칸방에서 하루 10시간씩 김일성 사상을 학습하며 얻어맞기 일쑤였다고 털어놨다. 젠킨스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며 김정일 정권시절엔 동료들과 영화에 동원돼 ‘악당 미국놈’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킹도 뻔하다. 자기 이름에 걸 맞는 임금님 대접은커녕 애물단지로 구박받을 터이다. 흑인인 탓에 영화에 써먹기도 마땅치 않다. 납치해온 외국여성이 없으니 홀아비로 살아야할 터이다(북한은 억류중인 외국인에게 조선여성을 짝 지워주지 않는다). 보리밥, 된장국을 앞에 놓고 그가 자주 갔다는 홍대 앞 식당의 치맥과 스타벅스 커피 생각이 간절할 터이다.

“하하하” 웃으며 월북한 그가 ‘엉엉’ 울며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투표 안내문이 왔다고 투표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케빈 김 법무사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지아에서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선거철이면 우편함에는 각종 안내문이 쌓이고, 휴대전화에는 참여를 권하는 문자가 이어진다. 그러

[행복한 아침] 노을 곁에서

김 정자(시인 수필가)    시월로 접어들자 일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산뜻한 가을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노을을 만나는 시간도 앞당겨졌다. 얼마만인가 땅거미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싹틀 무렵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싹틀 무렵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자유와 평등과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 나라에서도 스스로 고립과 소외를 선택한 노숙자의 삶의 현실에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사회 복지정책에 의

[신앙칼럼] 하나님 나라의 서막: 〈형상〉과 〈영광〉 (Kingdom Prologue: Image and Glory)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신명기Deuteronomy 6:4-5 1. 태고(太古)와 현하(現下), 그리고 영원불변의 현상인류의 역사는 시공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9)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9)

연방 보조금(SSI) 수급 자격을 지키는 변동 사항 신고와 오지급 방지 가이드· 부제: 소득·자산·주거 변경의 '익월 10일' 신고 원칙과 과다지급 환수·페널티 예방법·공식 발표일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행복

유치환 시인 사랑하는 것은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삶과 생각]  처참하고 비참한 천재와 인재
[삶과 생각] 처참하고 비참한 천재와 인재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성경의 기록과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는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이어지며 미래에도 계속될

[삶이 머무는 뜰] 당신은 끝내 행복한 나그네

조연혜 수필가 어떤 활기찬 것들은 치열함 속에서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관광객과 시민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시애틀의 영혼’이라 불리는 파이크플레이스마켓. 미국에서 가장 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으로 하수 역류까지 보상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으로 하수 역류까지 보상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우리는 이 단순한 원리를 이용해 집 안의 수도와 배수시설을 설계한다. 싱크대에서 사용한 물도, 샤워실의 물도, 세탁기의 물

[애틀랜타 칼럼] 건전한 불만은 세상을 이끄는 힘

이용희 목사 우리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그 일에서 만족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연스럽게 일에 적응하고 자신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만족이란 자신이 원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