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엘리트 학원

[삶과 추억] 새언니와 한복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7-24 13:23:06

삶과 추억, 윤영순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윤영순(메릴랜드)

 

며칠 전 오랜 병상생활로 고생하던 친정 새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였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쏟던 나의 중학교 시절이었다. 종가집 칠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여러 신부감을 소개 받았으나 모두 퇴짜를 놓고 굳이 한 아가씨를 소개받은 후 곧바로 결혼까지 골인한 올케 언니를 떠올린다. 

새 언니가 우리 집에 발을 디딘 첫 날이었나 보다. 예식장에서 대충 보았던 인상과는 달리 안방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댁식구들과 대면하는 자리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언뜻 이국적인 데다 우리 집안 식구들의 ‘부실한’ 눈썹과는 달리 짙고 고른 눈썹에 긴 속눈썹을 내려 깔고 있는 새언니 곁에 철없이 바짝 붙어 앉아 요모조모 얼굴을 뜯어보고 있는 막내 시누이를 의식한 듯 살포시 눈길을 피하던 새 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장난스러웠던 내 행동에 미소가 번진다.

그 뒤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한복을 놓은 적이 없었던 새 언니의 한복사랑과 옷맵시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대개의 경우 한복을 명절에나 한번 정도 입었다 가는 벗어버리는 보통 여자들에게는 60평생 한복을 벗은 적이 없었던 새언니가 경이로울 수밖에. 지금 같은 무더운 여름철에 잠자리 날개 같은 고운발의 아사나 인견, 모시치마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뜨거운 햇살을 양산으로 가린 채 단아한 자태의 한복차림으로 외출하던 젊은 시절 새언니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그뿐 아니라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할 때도 긴 치마를 끈으로 단정히 동여매고는 소매 한번 접어 올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음식 한 톨 옷에 묻히는 일 없이 편하게 작업하던 새 언니의 모습은 어쩌면 곧고 차분한 내성적인 성격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이 한복만을 고집하는 새언니에게 언젠가는 궁금증이 발동하여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새 언니 어떻게 불편한 한복을 60여년 철 따라 바꿔 입을 수 있어요?”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은 새 언니의 손 맞은 유별나다. 내가 결혼할 즈음, 새 언니의 음식 솜씨를 배워볼 양으로 부엌에 들어갔을 때, 내 등을 떠밀며 “아가씨, 시집가면 집집마다 가풍이 있어 음식 맛이 다르니 시집가서 배워도 늦지 않아요”라며 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새 언니는 종종 별미인 쫀득하고 달콤 고소한 색감과 맛을 곁들인 약밥을 만들어 집안 식구들의 구미를 당기곤 하였다.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은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도서관이 문을 닫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새 언니는 이제 영롱한 밤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2025년 1월 영주권 문호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1월 영주권 문호가 발표되면서 가족이민과 취업이민 전반에 걸쳐 미세한 진전만이 이루어진 가운데, 이민 희망자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번 문

[벌레박사 칼럼] 집안에 나오는 벌레 미리 예방하기

벌레박사 썬박 집안에 벌레가 나오는 곳을 보면 유독 벌레가 많이 나오는 장소들이 있다. 벌레들이 많이 죽어 있는 곳이나, 벌레가 자주 보이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미국에 있는 많은

[신앙칼럼] 외모에 끌리는 시대(An Era Of Attracting To Dishonesty, 사사기Judges 21:25)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를 대변하는 강

[행복한 아침] 새해 앞에서

김정자(시인·수필가)       새해 앞에 서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송구영신으로 다망한 시간을 보낸 탓으로 돌리면서도 습관처럼 살아온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새해에는 어떠한

[특별 기고] 지미 카터 대통령을 추모하며
[특별 기고] 지미 카터 대통령을 추모하며

장석민 목사 12월 29일(일요일), 미국 제39대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 (Jimmy Carter) 전 대통령이 별세하였다.고인이 되신 카터 대통령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며,

[화요 칼럼] 새(new) 땅에

한 달 넘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가기 전에 집 안팎을 낙엽 한 잎 없이 깨끗하게 치웠는데 뒤마당은 무화과, 장미, 사과 나뭇잎, 그리고 담장너머 뒷집 구아바(guava) 나

[민경훈의 논단] 간교하고 지혜로운 뱀의 두 얼굴
[민경훈의 논단] 간교하고 지혜로운 뱀의 두 얼굴

포유류 가운데 시력이 가장 좋은 동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인간이다. 인간은 20/20 비전이 있고 공간 지각력이 뛰어날뿐 아니라 100만개의 색소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전

[실리콘밸리View]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붙은‘계엄’꼬리표
[실리콘밸리View]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붙은‘계엄’꼬리표

“한국은 끝장이 났습니다.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모두 실리콘밸리로 몰려들어 투자금을 받아내려 혈안인데 굳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에 투자할 벤처캐피털(VC)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

[조윤성의 하프타임] 책임 물어야 할 ‘작전세력’들
[조윤성의 하프타임] 책임 물어야 할 ‘작전세력’들

위대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작은 배에 너무 큰 돛을 달아주면 그 배는 기울게 돼 있다”고 말한바 있다. ‘공정과 상식’이란 ‘미끼상품’을 내걸고 대선판에 뛰어들어 결국 대통

[시와 수필] 맑은 영혼의 사람들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침묵을 배워라   고요한 마음으로듣고 받아 들이라. (피타고라스,  580년  BC. 수학자, 철학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괴로움은 홀로 방에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