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순(메릴랜드)
며칠 전 오랜 병상생활로 고생하던 친정 새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였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쏟던 나의 중학교 시절이었다. 종가집 칠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여러 신부감을 소개 받았으나 모두 퇴짜를 놓고 굳이 한 아가씨를 소개받은 후 곧바로 결혼까지 골인한 올케 언니를 떠올린다.
새 언니가 우리 집에 발을 디딘 첫 날이었나 보다. 예식장에서 대충 보았던 인상과는 달리 안방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댁식구들과 대면하는 자리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언뜻 이국적인 데다 우리 집안 식구들의 ‘부실한’ 눈썹과는 달리 짙고 고른 눈썹에 긴 속눈썹을 내려 깔고 있는 새언니 곁에 철없이 바짝 붙어 앉아 요모조모 얼굴을 뜯어보고 있는 막내 시누이를 의식한 듯 살포시 눈길을 피하던 새 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장난스러웠던 내 행동에 미소가 번진다.
그 뒤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한복을 놓은 적이 없었던 새 언니의 한복사랑과 옷맵시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대개의 경우 한복을 명절에나 한번 정도 입었다 가는 벗어버리는 보통 여자들에게는 60평생 한복을 벗은 적이 없었던 새언니가 경이로울 수밖에. 지금 같은 무더운 여름철에 잠자리 날개 같은 고운발의 아사나 인견, 모시치마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뜨거운 햇살을 양산으로 가린 채 단아한 자태의 한복차림으로 외출하던 젊은 시절 새언니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그뿐 아니라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할 때도 긴 치마를 끈으로 단정히 동여매고는 소매 한번 접어 올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음식 한 톨 옷에 묻히는 일 없이 편하게 작업하던 새 언니의 모습은 어쩌면 곧고 차분한 내성적인 성격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이 한복만을 고집하는 새언니에게 언젠가는 궁금증이 발동하여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새 언니 어떻게 불편한 한복을 60여년 철 따라 바꿔 입을 수 있어요?”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은 새 언니의 손 맞은 유별나다. 내가 결혼할 즈음, 새 언니의 음식 솜씨를 배워볼 양으로 부엌에 들어갔을 때, 내 등을 떠밀며 “아가씨, 시집가면 집집마다 가풍이 있어 음식 맛이 다르니 시집가서 배워도 늦지 않아요”라며 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새 언니는 종종 별미인 쫀득하고 달콤 고소한 색감과 맛을 곁들인 약밥을 만들어 집안 식구들의 구미를 당기곤 하였다.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은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도서관이 문을 닫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새 언니는 이제 영롱한 밤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