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얼마 전 일이다. 함께 식사를 하던 친구가 불쑥 말을 꺼낸다. “너는 절친이 누군데” 뜬금없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급습당한 기분이 되어 “무슨 소리야, 너 지” “다행이다, 괜히 쫄았잖아” 난데없는 노년의 우정 확인에 슬픔같은 싸한 울림이 스치고 지나간다. 친구가 많이 외롭구나 직감하게 된다. 마주보며 쑥스러운 안도의 눈빛이 오가면서 겸연쩍은 웃음을 나눈다. 친구라는 말은 듣기만해도 마음이 다사로워지고 유년의 마을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훈훈한 마음이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보다 친구가 더 좋았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6.25 전란 폐허 속에서도 친구들과 노느라 해그름이 되어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친구들과 헤어지곤 했었다.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6년 동안을 한결같이 같은 학급에서 지냈던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했었고 중학교에서 여고로, 여고에서 대학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해 왔다.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친구들도 물갈이 하듯 서서히 다른 빛깔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들 학부모들과의 모임에서, 남편 친구 따라 강남도 마다 않으며 친구 규합이 이어져 왔던 친구의 연은 아슴푸레 안개 속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민자로 서른 여덟 해를 보내는 동안 이 땅에서 맺어진 친구 연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있었던 오래전 이야기다. 영국 한 신문사에서 현상 공모를 했는데 주제는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였다. 대부분 비행기, 기차, 도보 등 수단과 방법을 제시했지만 일등 정답으로 채택된 것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친구 없는 삶이란 고독하고 쓸쓸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친구란 영향력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신문사 행사였다. 모 직장인 사이트에서 ‘친구’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진정한 친구’ 찾는 일은 힘들다고 응답한 사람이 99.6%나 되었다. 어쩐지 삭막하고 적적한 심정이 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나이 깊어갈수록 진정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나 가뭄에 콩 나듯 기적처럼 여겨진다. 한글사전에는 친구를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또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로 뜻풀이가 되고 있다. 교우나 동료라는 뜻으로 두루 쓰이면서 죽마교우, 소꿉친구 등으로 쓰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와는 동떨어진 친구라는 관계가 무작위로 자행되고 있다. 만난 기간이나 서로를 신의하는 마음과는 관계없이 친구는 그냥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실수와 실망을 줄일 수 있는 방편에 이른 지경이다. 친구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믿음과 의리로 맺어지는 관계인 것인데 친구로 지칭하면서 조건이나 신분을 따지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차라리 지인이라는 칭함이 적합할 것 같은데 자신이 원하는 정황 안에서 친구 관계로 연결해 유익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욕심의 속성 때문인 것 같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다는 통념 탓에 폭넓은 관계를 위해 여러 모임에 참석하고 페이스북, SNS 등을 통해 의미 없는 문자를 주고 받느라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렇듯 만나지는 관계는 속 빈 강정처럼 진솔하고 진정한 친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인도 속담에 ‘친구는 나의 걱정, 나의 공포와 싸우는 호위병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네 인생 노정에는 기쁨도 행복도 찾아 들지만 힘겹고 어려운 시련으로 좌절을 동반해야하는 날들도 함께 안고 살아간다. 고난의 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정처 없는 인생길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버팀목 삼으며 의지할 수 있다면 고난도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소중한 세움이 비롯된다. 해서 친구란 넉넉할 때 어우러지며 즐겨주는데 그치는 것 보다, 외롭고 힘들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고 받으며 위로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의 자리가 아닐까 한다. 마음의 공허를 서로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처럼, 때로는 소소한 수다 가운데서도 맑은 정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벗을 두었다면 복되고 축복받은 일이다.
어떤 사람을 친구로 골라 사귀어야 할까를 궁리하기 전에 내가 과연 사귀고 싶어지는 사람일까, 먼저 생각해야할 일이다. 오리를 함께 해주기를 청하면 십리를 동행해 줄 수 있는가. 고난과 역경까지도 함께 해줄 수 있는가 자문해볼 일이다. 어떤 말을 해도 거북해 하지 않고 언제나 정이 가는 사람으로, 어려울 때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어설픈 농담도 웃음으로 받아주며, 악의 없는 허풍도 상쾌하게 받아주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가를 되짚어 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마주 앉아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사귐이란 늘 한계가 있고 보이지 않는 규범이 있어 군중 속의 외로움을 맛보게 되곤 한다. 먼저 좋은 벗이 되어 보자. 좋은 우정은 인생을 아름답고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마치 어둠을 밝히려 타오르는 촛불처럼 가야할 길을 밝혀주는 길잡이 같은 존재다. 친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하고 가치있는 자산이다.
친구, 벗, 우정.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언어가 아닌가. 눈을 감으면 잊혀지지 않는 영상으로 다가와 그리움으로, 동경으로 사모로 질펀하게 노구의 세포 세포에 저미듯 스며든다. 진정한 우정이 실종되어가는 시대라서 잔잔한 사무침으로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