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이 초대형 작을 추구하던 시대가 있었다. 1956년 개봉된 ‘십계’ 그리고 1959년의 ‘벤허’가 대표적이다.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투입하고, 웅장한 세트를 만들고 첨단 특수효과를 동원하면서 천문학적 제작비를 쏟아 부었다. 물자 풍부한 미국, 할리웃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1920년대 무성영화로 ‘십계’를 제작 감독했던 세실 드밀 감독은 50년대에 두 번째 ‘십계’ 에 도전했다. 수년간 사전 준비작업을 마친 드밀 감독은 1954년 가을 이집트로 향했다. 3개월의 로케이션 촬영을 위해서였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카메라 4대 등 장비들을 가지고 촬영팀이 처음 향한 곳은 시내산이었다. 그런데 장비를 이송하던 낙타들이 산 중반까지 가더니 더 이상 올라가지를 못했다. 결국 스탭들이 장비를 나눠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 촬영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 분의 촬영을 마치고 나면 필름을 트럭에 실어 10여 시간 떨어져 있는 카이로로 옮겼다. 그리고 나면 트럭은 다시 시내산으로 돌아와 다음날 촬영 필름을 받아 카이로로 옮기기를 반복했고, 필름 통들은 배에 실려 할리웃으로 보내졌다. 무엇이든 사람 손을 거쳐야 하니 엄청난 인력이 소요되었다.
스탭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이 필요했던 인력은 엑스트라였다. 모세가 이집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 장면을 찍을 때, 드밀 감독은 무려 2만5,000명의 엑스트라와 1만5,000 마리의 가축들을 고용/동원했다. 3마일에 걸친 광활한 사막에 이들을 배치해놓고 그는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확성기와 단파 라디오로 진두지휘했다.
당시 그의 나이 73세. 180cm 장신의 거구였지만 몸이 버텨내지를 못했다. 로케이션 끝날 즈음 심장마비가 와서 그는 LA로 돌아가고 스탭들이 촬영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바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117일 간의 세트장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 개봉 2년 여 후 결국은 심장마비로 사망, ‘십계’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웬만한 영상은 컴퓨터 그래픽스(CG)로 창조나 조작이 가능하니 많은 엑스트라가 필요 없고, 드론으로 공중촬영이 가능하니 무거운 장비를 메고 산꼭대기로 올라갈 필요도 없다. 촬영한 필름을 트럭이나 선박으로 옮길 일은 더 더욱 없다.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하던 일에 인공지능(AI)이 좀 더 깊이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사람은 밀려나는 게 아닐까 - 하는 불안에 할리웃이 마비됐다. 작가조합이 지난 5월 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배우들이 지난 주말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작가노조와 배우노조가 동반파업 하기는 1960년 이후 처음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배우노조 대표로, 마릴린 몬로가 노조 회원으로 참가했던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이다.
노조 측 요구조건은 기본급 인상과 근무조건 개선, 스트리밍 대기업의 공정한 수익분배 등. 하지만 핵심은 AI 활용 제한이다. A급 스타들은 모르겠지만 보통 배우들은 하루 촬영하고 하루 일당 받고 나면 영구히 일이 없을 수가 있다. 제작사가 이미지를 소유한 후 AI로 작업하면 이미지를 얼마든지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AI는 이미 할리웃에 깊이 들어가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시나리오를 쓰고, 딥페이크 AI가 배우의 얼굴과 성우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재창조하며, 영화 편집이며 특수 분장도 이제는 AI의 몫이다. AI가 흉내 낼 수 없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감정지능과 공감이 필수인 영역을 찾아야 하는데, 그건 할리웃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