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피닉스 머큐리의 스타 선수인 브리트니 그라이너가 원정 이동 도중 달라스 공항에서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라이너는 지난해 3월 러시아에서 공항 보안 검색 도중 대마초 농축액이 적발돼 러시아 당국에 억류됐고 징역까지 살았다.
미국 정부의 노력 끝에 같은 해 12월 석방됐고 이후 원 소속팀 피닉스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다. 당시 피닉스는 인디애나 피버와 원정경기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
그라이너를 공격한 사람은 알렉스 스테인이라는 이름의 우익 유투버였다.
그는 공항 복도에서 그라이너를 향해 고함치며 “여전히 미국을 보이콧하기를 원하는가” “그녀는 미국을 싫어한다” 등을 외쳐댔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충돌 장면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대로 공개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미국 언론들은 스테인을 ‘프로보커터’(provocateur)라 지칭했다. ‘프로보커터’는 도발(provoke)을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인터넷 등에서 글이나 영상을 통해 특정인이나 집단을 도발해 조회 수를 끌어 올리고 그렇게 얻는 관심을 밑천 삼아 금전적 이득을 얻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스테인의 도발 행위 역시 다분히 이런 것들을 노린 것이었다.
‘프로보커터’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들이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관심과 주목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종류의 ‘관심종자’들이라 할 수 있다.
‘프로보커터’들의 등장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이른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이다. 정보과잉 시대에는 모두가 주목하는 정보만이 경쟁력과 가치를 지닌다는 개념이다.
자극적인 도발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이것을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프로보커터’들은 ‘주목 경제’의 이런 개념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부류라 할 수 있다.
주목과 관심이 점차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무플보다는 특정 세력이 열광하는 악플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콘텐츠는 한층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가 된다. 포털에 뜨는 뉴스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프로보터커’는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싸움꾼’과 ‘음모론자’ 그리고 ‘삼위일체’(싸움꾼+음모론자+관종)형이 그것이다.
한국사회의 ‘프로보커터’를 연구해오고 있는 김내훈 씨는 싸움꾼형의 대표적 프로보커터로 진중권을, 음모론형 프로보커터로는 김어준을 꼽는다.
진중권에 대해서는 “주목이 걷히고 여유를 잃은 그에게는 억지와 악만 남았다”고 비판하고, 김어준에 대해서는 “우리 편만 결집하고 상대 진영과 중도를 배제하는 ‘정치 종족주의’에 빠져 있다”고 꼬집는다.
프로보커터들이 발붙일 공간을 만들어 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 온 것은 바로 언론들이다. 언론들은 이들의 도발을 아무런 여과 없이 중계방송 하듯 대중에 전달함으로써 ‘프로보커터’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데 일등 플랫폼이 돼 주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이들의 발언에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클릭 수 장사를 하려는 언론들의 속셈이 있다. ‘프로보커터’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들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어떤 ‘헛소리’를 했는지 궁금하다는 이유로 클릭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러면서 프로보커터들의 입지는 더 강화된다.
프로보커터들의 영향력이 큰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속셈에 넘어가는 것이며, 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회적 담론은 혼란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언어를 무분별하게 퍼다 나르는 언론의 각성과 콘텐츠 소비자들의 분별력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