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우리는 흔히 에로적인 사랑의 세계에만 상사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의 세계에도 상사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런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명백한 성경의 진술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세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세계에도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풍부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청교도인 존 오웬(John Owen)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깊은 나머지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상사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가 얼마나 깨달아 지겠는가?”
우리에게는 사랑으로 말미암는 감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거룩한 기쁨. 환희. 열렬한 사랑. 눈물로 범벅이 된 희열같은 애정의 정서가 지성과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과 이런 거룩한 사랑에서 자라는 것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영성의 깊이라는 것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경험하고 완전한 사랑의 교제 속에서 살아가는 영적 생활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의 상황은 사랑의 경험에 관한 복음의 진리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감격은 초보 신앙의 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지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임을 입정하는 증거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앙 생활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철가슴 돌마음 경연대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 항상 입상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자기는 신앙 생활에 철들고 나서 십년 동안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느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조국 교회의 메마른 지성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게 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던 시대에 교회가 복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한 시대는 없었습니다. 교회는 항상 피묻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복음의 광대한 의미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대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눈뜨기 전에는 항상 자신을 향해 먼저 손 내미시는 하나님과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