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일(서울경제 사회부장)
그리스신화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 ‘케이론(Chiron)’이 등장한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馬)이다. 케이론은 아킬레우스·헤라클레스 등 수많은 영웅을 길러낸 스승이다. 군주가 되려는 이는 케이론에게 리더의 자질을 배웠다. 반인반마는 인간의 이성과 야수의 심장 이 두 가지를 가져야 완벽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격함과 자상함, 이성과 감정, 원칙과 포용 등 두 얼굴의 리더야말로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맞았다. 검찰총장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대통령으로 변신하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처럼 전광석화처럼 대권을 거머쥔 경우는 유례가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유독 원칙과 법을 강조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의 궤적으로 미뤄볼 때 당연한 일이다.
밖으로는 북핵 문제와 한일 관계도 일단 원칙을 세우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듯하다. 안으로는 ‘건폭(건설폭력)’으로 대변되는 노동 개혁을 ‘뚝심’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케이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윤 대통령, 아니 윤 정부는 하나의 얼굴만 있을 뿐이다. 국민의 감정은 제쳐둔 채 원칙만 앞세운 반쪽짜리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반드시 국민의 사랑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취임 1년 된 날에 받아 든 33%의 낮은 지지율이 이를 말해준다.
미국의 도감청은 북핵 문제라는 대의 앞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무너진 감정을 달래준 정부 관료는 아무도 없었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핵과 미래를 위해 사죄와 반성은 묻어둬야 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눈앞에 닥친 북한 핵 위협과 격화되는 미중 갈등으로 한미·한미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동맹과 공조를 향한 과정과 방식이다. 정부가 마치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무작정 국민들을 끌고만 가는 형국이다.
노동 개혁 역시 ‘필요하니 가야 한다’는 식이다. 기득권이 된 양대 노총과 건설노조의 불법성을 단죄하는 것은 통쾌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만연한 불공정 보상과 쓰지 못하는 휴가 등은 뒷전이다.
새가 두 날개로 날듯 개혁도 두 날개를 펼쳐야 성공한다. 대의와 원칙에는 반드시 설명과 설득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움직이고 변화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리력 앞에서 잠깐 변화하는 척할 뿐 바뀌지는 않는다. 가짜 개혁이다.
국가 경영자는 두 얼굴을 가져야 한다. 부당함과 거짓에 대해서는 서릿발 같은 엄격함을 보이지만 뒤로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인자한 얼굴 말이다. 국민은 그런 ‘두 얼굴’을 보고 싶어한다. 외교와 내치도 마찬가지다. 원칙을 지킨다고 언제나 한 가지 모습만 보인다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뒤에서는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소통이다.
윤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이뤄내도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남북 데탕트에 매몰돼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퇴장한 전 정권과는 다르게 말이다.
개혁(改革). 말 그대로 가죽을 벗겨내 바꾸는 일이다.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는가. 그만큼 저항도 심하다. 결국 당위와 원칙만큼 합리적인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정교한 정책도 동반돼야 한다. 즉 노동 개혁에는 근로시간 개편과 함께 임금 체불 해결이나 직장 내 휴가 적체 해소 정책 등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정부가 천명한 3대 개혁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이제 4년밖에 남지 않았다. 윤 정부 시즌 2는 국가 미래를 위한 구조 개혁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단 케이론으로 대변되는 ‘두 얼굴’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