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엘리트 학원
경동나비

[삶과 생각] 봄날은 간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06 13:53:38

삶과 생각,박명희, 메릴랜드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박명희(메릴랜드)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예쁜 여자와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찾아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봄날’(김용택)

우리도 포토맥 강가와 볼티모어 앞바다로 봄바람 나러 봄나들이 갈 것이다.

한국에선 봄이면 황사로 고생하며 중국을 욕하며 지내다 미국에 오니 공기가 깨끗해서 좋다하니, 아는 이가 이곳의 자연은 날 것 그대로이니까 좀 기다려보란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와 야외 취침을 해도 끄떡없다던 남편은 반바지에 맨발 슬리퍼로 온갖 풀을 맨손으로 뽑아대더니 손과 발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고, 나는 잔소리하며 구경만 했는데도 온몸이 부풀었다.

병원엘 가니 영어로 포이즌이라고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한가득 주며 쉬운 말로 풀독이고 두드러기란다. 남편은 작업화를 벗을 때마다 양말에 진물이 묻어났고, 나는 약에 취해 가을까지 원피스잠옷 귀신처럼 지냈다. 그 뒤로도 장화, 긴옷, 모자, 장갑과 벌레약을 뿌리지만 해마다 고생한다.

할일 많은 거친 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수확이 풍성한 가을볕엔 딸 내보내는데 할머니인 나는 아직도 며느리처럼 봄이 되면 호미랑 삽을 들고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주차장만한 텃밭인데도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날이 밝으면 나가 배가 꼬르륵해서 기어 들어와 아이고 난 새참 주는 놈도 없네 하며 허겁지겁 퍼먹는다. 봄이 되어 땅이 부풀면 인간 트랙터인 남편이 곡괭이와 삽으로 마구 뒤집고 온갖 거름을 부었더니 이제는 제법 흙이 부드러워지고 검은 빛도 난다. 그래도 워낙 오래된 집터라 온갖 뿌리를 해마다 잘라내고 뽑아내도 끝이 없다. 예전엔 거름 냄새가 나면 에이! 하며 찡그렸는데 요즘엔 킁킁거리며 야! 저 집은 부자인가봐! 똥거름 많다며 부러워한다.

지난번엔 귀하고 비싼 닭똥 거름을 준다기에 온 몸과 차 바닥에 똥물을 질질 흘리며 얻어왔다. 거기에다 겨울 내내 온갖 찌꺼기와 톱밥으로 내가 만든 퇴비도 부어놓으니 냄새는 진동하지만 봄 농사 준비는 다 되었다.

우리가 거름 만들기에 진심인 것은 텃밭 농사가 왜 보잘 것 없는지를 알고 나서다. 우리는 맛있는거 먹으면서 밭에는 꼴랑 봄에 퇴비만 몇 푸대 살살 덮어놓고 투덜거린 게 원인이라는 걸 알고 텃밭도 잘 먹였더니 나를 닮아 짜리몽땅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오이 토마토 가지 허브가 제법 열리고 고추도 우리 생각엔 대풍년이라서 따도 따도 열리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텃밭이 안정을 찾아가니 남편이 인터넷으로 배운 가지치기를 한다며 이상하게 자른 뒤로는 대추 살구 매실 단감 수확이 별로였다. 올 봄엔 나무에 살이 좀 오른 것 같았는데 어느새 살구꽃이 한창인 나무에 올라가있는 꼴에 나는 사다리를 팍 차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교양 있게 봄에는 가지치기하는 게 아니니 좋은 말 할 때 내려와 새참 드시라고 달랬다.

그래놓고 나 또한 봄이 되면 응! 급할 거 없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해놓고 냅다 홈디포로 달려가 손주들이 좋아한다고 몇 년째 심고 죽이는 블루베리 묘목과 야채모종을 추울까봐 거실에 들여놓고 구박을 받는다.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에 재채기를 해가며 저녁이면 끙끙 앓으면서도 내가 뽑은 잡초를 쌓아놓고 일 자랑을 한다. 그런데 저 민들레 같은 잡초는 가만히 보니 치커리인가? 허브인가? 새싹들은 언제나 비슷해 보이는데 내일 다시 심으면 혹시 살아날 수 있을까?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