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 (한울 한국학교 교장)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으로 소개한다. 세계대전을 주도하는 독일을 비판하여 매국노 소리를 듣고 왕따를 자처했던 헤세는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카를 구스타프 융과의 만남이 되었고 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뽑히는 ‘데미안’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헤세의 사색은 우리에게 삶의 일상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나는 삶을 행복으로 보지 않고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오로지 깨어있는 의식을 통해서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이자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대한 많은 행복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삶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최대한 깨어있는 의식으로 살고자 한다. 행위와 고통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두 기둥이자 삶 전체이며 하나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잘 살아내는 것이 인생의 절반이다. 고통을 잘 살아내는 것이 인생 전체이다!”
그는 이제 삶의 잔혹함도 고통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이하고 받아들인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피조물 중,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능력이자 최고의 능력이다. 헤세는 그 시절 많은 일기를 썼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행복인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픈 통증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비눗방울처럼 살포시 떠올랐다. 나는 정말 행복한가?
최인철 교수는 ‘행복은 마음속에 관심이 있는 상태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하는 질문과 “당신은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는 같은 질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마음에 있는가? 아니면 몸에 있는가?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둘로 나뉘어 한쪽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 하면 그렇지 않은 쪽보다 훨씬 강의 내용에 동의한다고 대답한다는 결과다. 이 실험은 어떤 행동이 마음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리학자 에릭 클링거는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다’라고 말했다. 행복한 삶이란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소명이 이끄는 삶이다. 행복은 어떤 특별한 조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의미’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