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에세이] 엄마 김밥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3-20 17:22:32

에세이,이보람 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이보람(수필가)

뚝딱뚝딱 정겨운 요리 소리가 부엌 너머에서 들려온다. 집 김밥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엄마가 장을 봐오셨다. 들기름에 달달 볶은 달큼한 당근 냄새에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한쪽에서는 갓 지은 밥이 준비되었음 알리는 밥솥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나는 엄마 옆에서 엄마의 명령대로 재료들을 척척 꺼내며 조수 역할을 한다.

어제 김밥이 너무 고파서 급한 대로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서 먹기는 했다. 맛이 영 시원찮다. 가격은 이게 김밥인지 금밥인지 모를 정도로 올라 십 불이나 했는데도 말이다. 엄마표 집 김밥이 간절했다. 집에서 갓 만든 고소한 참기름 내 나는 그 김밥이 먹고팠다.

엄마가 금세 내온 김밥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기 무섭게 손이 먼저 나가 김밥 하나를 입에 쏙 넣어본다. 아 이 맛이야! 얼마 만에 맛보는 엄마표 김밥인가. 맛있어서 거짓말 조금 보태 눈물이 다 났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벌써 온갖 재료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꼬다리만 남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꼬다리의 모습이 산후 탈모로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자라고 있는 내 머리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내 머리꼴 닮은 너도 먹어보자! 꼬다리가 순식간에 입으로 직행한다. 

김밥 한 줄이 어느새 온 데 간데 없어졌다. 밥을 한 솥을 지었는데 김밥 네댓 줄을 싸니 금세 바닥이 났다. 엄마는 남은 한 줄은 막내 동생을 주겠다며 싸신다. 어미새가 아기새들 새 모이를 주듯 엄마는 나도 먹이고 또 다른 입도 챙긴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엄마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따봉을 날려 본다. 내가 하면 김밥이 다 터지기 일쑤고 맛도 그저 그런데 엄마는 별 재료 없이도 맛깔난 김밥을 이렇게 내오는 것을 보면 역시 베테랑 주부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도 김밥을 좋아하지 않고 애들도 김밥을 먹을 나이가 아직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해 김밥을 만들기가 망설여진다. 나 혼자 김밥을 먹자고 그 많은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조리하고 싼다고 생각만 해도 버겁다. 설거지할 조리도구 및 그릇은 또 얼마나 많이 나오겠는가.

창밖으로는 비가 세차게 몰아치는데 김밥을 먹고 있자니 소풍 가는 느낌도 들고 괜히 마음이 들뜬다. 

소풍날 단골 음식이었던 김밥. 아이 다섯 명을 낳아 기른 우리 엄마도 다섯 명의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마다 그 김밥을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스레 싸곤 했다. 이제 출가한 딸이 둘에 멀리 타주에 사는 자식이 둘이나 되어 자식들을 위해 김밥 쌀 날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다 큰 딸내미의 주문에 군말 없이 이렇게 김밥을 싸주러 오셨다.

오늘 배부르게 김밥을 먹었으니 또 한동안은 김밥이 그리워지진 않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엄마의 김밥을 먹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백 줄은 더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알면 기함을 토할 철부지 딸의 바람이지만 엄마 몰래 그렇게 기도했다.

언젠가는 나도 두 딸아이의 소풍날에 맛깔나게 김밥을 쌀 줄 아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딸들이 엄마표 김밥 싸달라고 조르는 날이 올까. 엄마의 김밥 레시피를 받아 연습 좀 해봐야겠다. 

올봄에는 작은 아이들 입 속에 쏙 들어갈 미니 김밥을 만들어 엄마를 모시고 꽃놀이를 가야겠다.

[에세이] 엄마 김밥
이보람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추방 작전 준비 완료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본격적으로 실행할 준비를 마쳤다. 톰 호먼(Tom Homa

[벌레박사 칼럼] 터마이트 관리 얼마만에 해야 하나?

요즘 들어 타주에서 이사 온 고객들로부터 터마이트 관리에 대한 문의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 타주에서는 터마이트 관리를 안 했는데, 조지아는 터마이트가 많아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

[행복한 아침] 세월 속에서 만난 새해

김정자(시인·수필가)     지난 해 연말과 새해 연시를 기해 다사다난한 일들로 얼룩졌다. 미국 39대 대통령을 역임하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께서 12월 29일 향연 100세로 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새로움의 초대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다. 연휴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새로움을 마주하는 희망찬 의지를 다질 새도 없었다. 새해부터 경건해야 할 삶의 질서

[신앙칼럼] 명품인생, 명품신앙(Luxury Life, Luxury Faith, 로마서Romans 12: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지금 조금 힘쓰면 영혼이 큰 평화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인생을 <명품인생(Luxury Life)>이라 과감하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유럽은 산적한 위협의 한 복판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전통적인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들끓는 분노 속에 침몰했다. 경제는 둔화세를 보이거나 기껏해야 답보상태

[오늘과 내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작년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떼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순간에 우리는 질문해 본다. 지난 한해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후회되고 아쉬웠던 일은 없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굉장히 낯선 이름의 이 화가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매혹했던 경이로운 여성이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이자 파격의 아이콘이며 사교계의 총아이기도 했던 그녀는 남자와 여

[에세이] 묵사발의 맛

꽃동네에서 먹은 묵사발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처음 꽃동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수녀님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가는 동네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시와 수필] 하늘 아래 사람임이 부끄러운 시대여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