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에세이] 엄마 김밥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3-20 17:22:32

에세이,이보람 수필가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이보람(수필가)

뚝딱뚝딱 정겨운 요리 소리가 부엌 너머에서 들려온다. 집 김밥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엄마가 장을 봐오셨다. 들기름에 달달 볶은 달큼한 당근 냄새에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한쪽에서는 갓 지은 밥이 준비되었음 알리는 밥솥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나는 엄마 옆에서 엄마의 명령대로 재료들을 척척 꺼내며 조수 역할을 한다.

어제 김밥이 너무 고파서 급한 대로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서 먹기는 했다. 맛이 영 시원찮다. 가격은 이게 김밥인지 금밥인지 모를 정도로 올라 십 불이나 했는데도 말이다. 엄마표 집 김밥이 간절했다. 집에서 갓 만든 고소한 참기름 내 나는 그 김밥이 먹고팠다.

엄마가 금세 내온 김밥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기 무섭게 손이 먼저 나가 김밥 하나를 입에 쏙 넣어본다. 아 이 맛이야! 얼마 만에 맛보는 엄마표 김밥인가. 맛있어서 거짓말 조금 보태 눈물이 다 났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벌써 온갖 재료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꼬다리만 남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꼬다리의 모습이 산후 탈모로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자라고 있는 내 머리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내 머리꼴 닮은 너도 먹어보자! 꼬다리가 순식간에 입으로 직행한다. 

김밥 한 줄이 어느새 온 데 간데 없어졌다. 밥을 한 솥을 지었는데 김밥 네댓 줄을 싸니 금세 바닥이 났다. 엄마는 남은 한 줄은 막내 동생을 주겠다며 싸신다. 어미새가 아기새들 새 모이를 주듯 엄마는 나도 먹이고 또 다른 입도 챙긴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엄마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따봉을 날려 본다. 내가 하면 김밥이 다 터지기 일쑤고 맛도 그저 그런데 엄마는 별 재료 없이도 맛깔난 김밥을 이렇게 내오는 것을 보면 역시 베테랑 주부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도 김밥을 좋아하지 않고 애들도 김밥을 먹을 나이가 아직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해 김밥을 만들기가 망설여진다. 나 혼자 김밥을 먹자고 그 많은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조리하고 싼다고 생각만 해도 버겁다. 설거지할 조리도구 및 그릇은 또 얼마나 많이 나오겠는가.

창밖으로는 비가 세차게 몰아치는데 김밥을 먹고 있자니 소풍 가는 느낌도 들고 괜히 마음이 들뜬다. 

소풍날 단골 음식이었던 김밥. 아이 다섯 명을 낳아 기른 우리 엄마도 다섯 명의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마다 그 김밥을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스레 싸곤 했다. 이제 출가한 딸이 둘에 멀리 타주에 사는 자식이 둘이나 되어 자식들을 위해 김밥 쌀 날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다 큰 딸내미의 주문에 군말 없이 이렇게 김밥을 싸주러 오셨다.

오늘 배부르게 김밥을 먹었으니 또 한동안은 김밥이 그리워지진 않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엄마의 김밥을 먹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백 줄은 더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알면 기함을 토할 철부지 딸의 바람이지만 엄마 몰래 그렇게 기도했다.

언젠가는 나도 두 딸아이의 소풍날에 맛깔나게 김밥을 쌀 줄 아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딸들이 엄마표 김밥 싸달라고 조르는 날이 올까. 엄마의 김밥 레시피를 받아 연습 좀 해봐야겠다. 

올봄에는 작은 아이들 입 속에 쏙 들어갈 미니 김밥을 만들어 엄마를 모시고 꽃놀이를 가야겠다.

[에세이] 엄마 김밥
이보람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독자기고]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 한 K-컬쳐
[독자기고]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 한 K-컬쳐

김대원(애틀랜타 거주) 요즈음 케이 팝과 한국의 민요인 아리랑 그리고 구곡간장을 녹이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10대 20대의 젊은 외국인들이 대단히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온

[법률칼럼] DACA, 2026년 현재와 미래… 드리머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케빈 김 법무사 2012년 시작된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는 미국에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입국한 서류미비 청년들에게 추방을

[행복한 아침]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들

김 정자(시인 수필가)   하루 일상의 시작은 식사준비에서 시작된다. 매일 설거지하고 치우고 닦기를 번복해도 그리 표시가 나지 않는데 며칠만 손을 놓으면 당장 뒤죽박죽에 난장판 일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초여름인 6월의 날씨는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싱그럽다.빗물 머금은 풋풋한 신록의 나무 잎새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있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대대적인 디지털 대전환 선언: 사회보장국(SSA)의 운영 혁신과 은퇴자 가이드종이 없는 모바일 SSN 도입, 24시간 디지털 서류 제출 등 대고객 서비스 개편 총정리 천경태 (금융

[신앙칼럼] 폭염의 향성: 솔라 피데(Tropism in the Sweltering Heat: Sola Fide, 마태복음Matthew 26:3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믿음의 향성(Tropism of Faith)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자극에 끌려 미세하게 반

[추억의 아름다운 시] 나무들

조이스 킬머 나는 결코 볼 수 없으리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굶주린 입으로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잎새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한미우호협회(회장 박선근, 이사장 프랭크 브레이크)가 주최한 한국전 기념 및 헌화 행사가 지난 7월 24일 엄숙히 거행됐다.1992년부

[수필] 뒷짐 진 삶에게 던지는 질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평소 같으면 골프를 치고 돌아와 가방만 슬쩍 던져놓고는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던 과묵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현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최선호 보험전문인 똑같은 물건을 남보다 비싸게 사면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옆집 사람과 완전히 같은 물건을 샀는데 나만 더 비싼 값을 냈다면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