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1990년 3월4일 한만희, 김동식, 심중구, 이웅길, 권명오, 김철, 최왈수, 정바른 씨가 연극협회를 창립을 했다.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나는 창립 공연작 아메리카 저멀리카(정하연 작 권명오 연출)를 연극협회 창립 첫 공연작으로 결정해 막을 올린 것이 뜻밖에 대성공을 이루게 된 후 계속 8회까지 새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연극의 꽃을 피우고 한인사회에 극예술의 향연을 펼치고 관객들의 격찬을 받으면서 고달프고 각박한 이민사회에 예술의 꽃을 피웠다. 그런데 그렇게 찬란하고 어렵게 공연을 해왔던 애틀랜타 한인연극이 지금 완전히 중단된 채 유명무실하게 사장된 상태라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원망스럽다.
나의 마지막 연출 ‘울고 넘는박달재’와 서희경 연출 ‘어머니’ 공연이 전성기였다. 그동안 애틀랜타 연극의 성공은 연극협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피나는 노력과 함께 한인단체들과 동포들의 사랑과 후원 때문에 가능했다. 그중 실험극단 단원이었던 김철씨와 중대 연극영화과 졸업생인 김경식씨와 국립극단에서 조연출을 했던 정바른씨 및 라디오 성우 출신 허경림씨와 이옥경씨등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적극 참여해 준 김동식씨와 김문성씨 및 연극에 처음 참여한 1.5세 연기자인 문형재, 김용훈, 이창욱 등 젊은 1.5세들과 후에 참여한 이원경, 강신범, 최영찬, 김은정, 김정은, 정정미, 허견, 최창덕, 박경희, 강옥희, 김두만, 유은혜씨와 특별 출연한 김복희, 이순주씨 등 훌륭한 연기자들의 노력으로 공연이 이어졌고 그와 함께 뒷 스탭들과 연예인협회 회원들의 참여와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당시 미국 한인동포 사회에서 애틀랜타가 연극활동이 가장 활발해 격찬의 대상이었다. 나는 한때 연극에 전념하고 11년간 TV 탤런트로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러다가 이민을 선택하고 새 인생을 시작한 후에도 극예술에 대한 꿈과 희망을 버리지 못하다가 다시 애틀랜타에서 꿈을 펼치게 됐다. 무엇보다 1.5세 문형재, 김용훈, 이창욱, 김은정, 김정은 등 젊은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고 또 연기도 훌륭해 연극에 대한 미래가 밝았다.
훗날 후세들이 1세들이 겪은 피눈물나는 이민사를 영어로 무대에 올려 미국사회와 국제무대에서 한인 연극인들이 극예술에 새 역사를 장식할 꿈에 부풀었었다. 그런데 이민사회의 현실은 연극을 한다는 그 자체가 모험이었고 무엇보다 먹고 살고 정착해야 될 문제가 시급해 연극을 계속할 수가 없어 각자 생활전선으로 복귀해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게 됐다. 어떻게든 연극을 다시 하려고 노력했지만 회원들이 생활에 바빠 어쩔 수가 없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왜 연극을 안 하느냐고 묻지만 나는 할말을 잃고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애틀랜타 연극의 꽃을 피우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찌됐든 연극의 꿈을 접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인생은 연극인데 내 인생의 미완의 연극도 막을 내릴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