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삶과 생각]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2-27 16:40:16

삶과 생각,문일룡 변호사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문일룡(변호사)

아버지가 떠났다. 약 12년 전에 먼저 간 어머니를 찾아가신 거다. 거의 90년을 이 세상에서 사셨으니 장수의 복을 누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100세까지는 어렵지 않다고 누누이 얘기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돌아가신지 3주가 지난 저번 주말에 장례를 마쳤다. 먼 곳에 가 계시다가 돌아가셨기에 시신을 이 곳까지 모시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장례는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가족들만 모여서 조용히 치렀다. 50년을 이 지역에서 사셨으니 주위에 아는 분들도 많은데 소식을 알리지 않고 가족들만 모여서 마지막 인사를 드린 게 죄송스럽다. 아버지는 유가족과 친구들을 번거롭게 하는 일을 피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던 아버지의 성격을 기억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 모두 각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유독 특이했던 것 같다. 변화를 싫어하는 것만큼 인내심도 강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매일 아침식사는 라면이었다. 몸에 좋지 않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소용없었다. 그리 안 좋다면 어떻게 당신처럼 오래 살 수가 있겠느냐고, 내가 반박이 궁한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도 다행히 어느 시점부터는 혈압에 좋지 않은 염분 섭취를 줄이려고 라면 수프 양을 절반 이상 줄였다. 

미국에 취업이민을 와서 은퇴할 때까지 오직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셨다. 영어를 잘 못 했기에 승진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전동기 수리 기술에 대해서는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다.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정부 건물에서 사용되는 냉온방 장치 전동기의 상당수를 당신이 수리했다고 자랑하곤 하셨다. 나머지 가족들보다 1년 먼저 미국에 와서 일하는 동안 이 월급으로는 도저히 이제 곧 오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힘드니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다고 고용주를 협박해서 파격적인 월급 인상을 유도했다는 아버지의 무용담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할 때 매일 집에서 준비해갔던 아버지의 점심은 늘 볼라냐 샌드위치였다. 메뉴가 바뀐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같은 음식을 그렇게 오래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지 불가사의였다. 퇴근 후 바로 저녁식사를 하고 취미로 한 일도 저녁 테이블 그 자리에 앉아서 하는 포커카드 패떼기였는데 몇 시간은 쉬지 않고 했다. 그것도 매일.

그런 아버지가 당신이 살던 작은 타운하우스를 정리하고 성인 데이케어가 아래층에 있는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적응을 못하고 나오신 것은 뜻밖이었다. 그 후 내 집에서 몇 주 계시다가 그래도 세 자녀 중 직장에서 은퇴한 딸이 아버지를 돌보는 게 최적격이라 동생이 아버지를 모셔갔고 한 1주일 정도는 잘 계셨다. 

그러다가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바로 비행기 표를 구해 달려갔다. 열 몇 시간을 가서 뵌 아버지의 모습은 많이 변해있었다. 아버지를 매제와 함께 부축해 식탁에 앉혀 모시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소주를 두어 잔 같이 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잠자리에 드셨다. 나도 아버지 옆에 누워 아버지 손을 잡았다. 살은 다 빠졌지만 통뼈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잠에 들었던 아버지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내가 다음 날 밤샘 비행기로 돌아와서 일을 좀 보고 다시 하룻밤을 지낸 후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떠셨다는 동생의 텍스트 메시지였다. 무려 55시간의 깊은 잠을 뒤로 하고 말이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생각난 게 뉴욕에 사는 둘째 아들이었다. 보스턴에 사는 큰 애는 얼마 전 태어난 갓난애 때문에 꼼짝 못하지만 둘째는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그 날 아침에 비행기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둘째에게 연락하니 이미 고모로부터 소식을 들었단다. 그리고 자신은 비행기 표도 미처 취소 못한 채 나와 같이 있기 위해 지금 이미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과 속 깊은 둘째에 대한 고마움이 범벅됐다.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웠다. 

[삶과 생각]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문일룡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독자기고]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 한 K-컬쳐
[독자기고]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 한 K-컬쳐

김대원(애틀랜타 거주) 요즈음 케이 팝과 한국의 민요인 아리랑 그리고 구곡간장을 녹이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10대 20대의 젊은 외국인들이 대단히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온

[법률칼럼] DACA, 2026년 현재와 미래… 드리머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케빈 김 법무사 2012년 시작된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는 미국에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입국한 서류미비 청년들에게 추방을

[행복한 아침]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들

김 정자(시인 수필가)   하루 일상의 시작은 식사준비에서 시작된다. 매일 설거지하고 치우고 닦기를 번복해도 그리 표시가 나지 않는데 며칠만 손을 놓으면 당장 뒤죽박죽에 난장판 일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초여름인 6월의 날씨는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싱그럽다.빗물 머금은 풋풋한 신록의 나무 잎새는 부드러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있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7)

대대적인 디지털 대전환 선언: 사회보장국(SSA)의 운영 혁신과 은퇴자 가이드종이 없는 모바일 SSN 도입, 24시간 디지털 서류 제출 등 대고객 서비스 개편 총정리 천경태 (금융

[신앙칼럼] 폭염의 향성: 솔라 피데(Tropism in the Sweltering Heat: Sola Fide, 마태복음Matthew 26:3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믿음의 향성(Tropism of Faith)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자극에 끌려 미세하게 반

[추억의 아름다운 시] 나무들

조이스 킬머 나는 결코 볼 수 없으리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굶주린 입으로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잎새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삶과 생각] 한국전 기념 및 헌화행사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한미우호협회(회장 박선근, 이사장 프랭크 브레이크)가 주최한 한국전 기념 및 헌화 행사가 지난 7월 24일 엄숙히 거행됐다.1992년부

[수필] 뒷짐 진 삶에게 던지는 질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평소 같으면 골프를 치고 돌아와 가방만 슬쩍 던져놓고는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던 과묵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현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클레임, 무조건 신청해야 하나

최선호 보험전문인 똑같은 물건을 남보다 비싸게 사면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옆집 사람과 완전히 같은 물건을 샀는데 나만 더 비싼 값을 냈다면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