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중국이 쏘아 올리고 미국이 격추한 정찰풍선 하나가 미중 관계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미중 사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처음으로 대면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 정상은 치열하게 논쟁했지만 양국의 레드라인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중 관계가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드레일’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올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만난 양국 관료들은 중단됐던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토니 블링컨은 미 국무장관으로서 5년 만에 방중 해 시 주석과의 면담도 계획하고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이 풍선 하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어디까지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미확인 중국 비행 물체의 미국 영공 침범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격추하기로 한 결정은 국제법적으로 하자가 없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도 중국의 풍선이 세 번이나 미국 영공을 침범한 적이 있었지만 중요한 기밀을 취득해간 정황이 없었고 미국 국민의 눈에 띄지도 않아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이번에는 미국 국민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CNN과 폭스뉴스는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라도 격추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중국의 풍선이 미 영공에서 목격된 순간 곧바로 공화당은 이를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국 정책 실패로 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단호하지 못해 중국이 미국을 얕잡아봤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우리를 짓밟게 놓아두고 있다(Biden is letting China walk all over us)”고 했고 강경파 하원의원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하얀 풍선을 들고 국회에 출석해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공화당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미국 국민이 총을 들고 나와 직접 풍선을 격추해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했다. 정말 비상 상황이었다면 행정부와 의회가 소통 채널을 가동해 초당적 대처를 논의했어야 하는데 미국 정치권은 싸움에만 골몰했다.
풍선 사건 이전에도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 정책에 공세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렵게 하원의장 자리에 오른 케빈 매카시 의원은 원 구성 전에 이미 중국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3월에 첫 청문회를 개최해 대만에 공여하기로 한 200억 달러가량의 군사 지원이 지체되고 있는 이유를 캐물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하원의 정부감시위원회(Oversight Committee)를 소집해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의 중국 사업 적법성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미국도 한국처럼 정당정치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민주·공화 양당 사이에 대중 강경책에 대한 초당적 합의는 존재하지만 대중 정책의 선명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국내 정치 상황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 정책을 본인이 희망하는 것보다 더 강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3연임에 성공한 시 주석은 추락한 중국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전랑 외교 기조도 누그러뜨리고 국제사회를 향해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미중 관계도 관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중국과 경쟁은 하되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정책에서 협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 정책 운신의 폭은 매우 협소해 보인다.
풍선 잔해물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중국 정찰풍선이 취득한 정보는 아마 구글어스 정도로도 취득 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거의 퇴물 수준이 된 정찰풍선 하나 때문에 국무장관의 방중이 무산되고 미중 관계가 다시 악화 일로를 걷게 됐는데 이게 바로 미중 관계의 현주소다. 이번 사건은 미중 사이에 긴밀한 소통 채널이 가동되지 않으면 작은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사 사건이 대만해협에서 발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