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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가을 수필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11-04 09:23:48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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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가을 깊숙이 들어섰다. 계절 마다 참을성 없이 덥다고, 춥다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곤 했던 습관적 표현이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열매의 보람을 위해 뜨겁게 최선을 다한 성숙의 계절이었는데. 가을이 찾아 드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려 하지만 가을이 들어서면 유난히 감성적, 성찰적 존재성이 회복되는 것 같다. 

산뜻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더니 그리 멀지 않은 저 만치에 계절 끝자락이 보이듯 삶의 기슭 끄트머리 모퉁이가 어렴풋이 비친다. 어찌 보면 계절을 거두어 수습하고 정돈하는 자연의 섭리가 인생살이에 비견되기도 한다. 피천득 작가 <수필> 중에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여섯 중년 고개를 넘어선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수필은 마음 산책으로 그 속에는 인생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다”고 했다. 

가을과 수필의 어울림은 생의 고단함을 품어주기도 하고 인생여정에서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하는 다정하고 촉촉한 지침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을은 중년의 계절로 칭함받는 명제 앞이라 가을을 수필의 계절이라 일컫는 것 까지 가을이 글읽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표현일 것 같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읽어지는 수필은 그리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음 이라서 부대끼는 일상 중에 휴식 같은 쉼을 허락받을 수 있다. 수필을 읽고 싶은 마음 위에 풍요로움이 가득한 황금빛 차림새와 붉은 단풍 톤으로 가라앉은 원색을 내추럴하고 깊은 색감으로 배색하듯 수필의 맛 또한 오묘한 색감으로 다가온다. 

단풍이 물들고, 오곡백과가 무르 익고 단풍 진 잎이 지기 시작하는 금추의 맑은 하늘 깊이 만큼 수필의 깊이도 더 진한 감동으로 읽혀질 것이다. 붉은 노을, 가을 여행, 단풍이며 낙엽, 가랑잎, 소풍 등을 주제로 쓰여지는 수필들을 큰 기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열게 되지만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마음이 치유되는 기대 밖의 참신한 과정을 겪게 되고 온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서늘한 큰 깨달음을 얻게도 된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소통을 경험하게 되면서 작가와 무한대의 대화를 열어가는 계기를 열어 가기도 한다.

소설은 읽는 내내 독자의 감성을 강제성을 느낄 만큼 붙들어 매면서 흥분과 불안과 한숨, 안타까움과 도발과 열정, 모험심까지 휩싸이게 되지만, 수필은 줄곧 따스한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하고 따스함에 불과하다는 촌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네 삶 속에서 훈훈하고 넉넉한 평안을 심어주기도 하고 살아온 삶을 되돌리며 돌아볼 수 있는 어질고 선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삶에 지쳐 기진했을 때 우리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 수필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맑고 푸른 하늘이 있는, 생의 화려함, 마지막 처절까지 함유하고 있는, 사색과 성숙이 공존하는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가을을 노래하고 숙고한 수필들을 취향대로 마음껏 고르시어 가을의 마지막 하소연을 그 호소를 들어보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서 생각이 높아지고 마음이 살찌고 풍요로워지는 수필읽기 향연에 발걸음을 들여놓는 일을 잊지 않으시고 참여해 보시기를 강권드리고 싶어진다. 어디든 떠나고 싶어지는 이 가을을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지, 망설여지는 가을 나그네가 된 초로의 아낙에게는 감성에 젖어볼 시한도 가을 밖에는 없는 듯 하여 아담한 표지를  입고 있는 가을 수필집을 집어본다. 가을 내음이 깃든 수필들을 다시 들추어내 듯 한 편 한 편 읽어 본다. 

수필 보따리를 풀어보노라면 가을을 골 수 깊게 표현한 수필을 만나기도 하고, 아팠던 일, 즐거웠던 회상에 잠기는 멋도 누리게 된다. 아팠던 일도 가을 하늘을 우러르고 있노라면 맑고 푸른 회상들로 편집되기도 한다.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실려 수필도 함께 익어간다. 센티멘탈 감성에 젖어보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계절이 가을이다. 한 더위가 떠난 한가로운 바다의 호젓한 적적함도 만나고 한 없이 맑고 깊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도 보고싶어지는 이 가을을 어찌 떠나보낼 수 있을지 초조해진다. 가을이 다하기 전에 짙은 감성의 정점을 만끽하고 싶은데.

중년 전후의 남정네들 더러는 가을을 앓는다고 법석이다. 어찌 보면 가을앓이하는 것 또한 순결이요 순박한 비범이다. 그 농도만큼 삶이 정화되고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터득하는 길이다. 가을 감성을 소녀적 취향이라며 낡고 어울리지 않는 선호라는 편견을 접어야 한다고 항변해주고 싶다. 오히려 살아온 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선한 쉼표가 되어줄 것이라서. 가을이 익어가는 대자연 앞에 서면 차오르는 그리움을 거부할 수가 없다. 허무와 부질없음에 대하여, 소슬하고 잔잔한 적막에 대하여, 인간의 탐욕에 대하여 어떠한 해법도 어떤 처방도 숭고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비워내고,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도 가을의 손짓인 것을. 가을 수필이 지닌 그리움이며 외로움의 미묘한 흐름의 차이를 줄여보느라 가을 밤이면 일찍 잠들 수가 없다. 가을을 품으며 가을을 딛고 노래한 수필집이 손에 들려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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