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서양에는 효라는 말이 없다. 최근 고국에선 불효자에게 주어진 부모 유산을 도로 되돌릴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한다. 옳은 일 같긴 한데 어쩌면 효라는 말 자체가 없는 나라에 비하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부모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불효자들이 자행할 무질서한 병폐들이 민생들에게 얼마나 혼란을 끼칠까. 가정 울타리에 법이 개입하기에 앞서 사랑의 끈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일터로 이어지고, 행복한 일터는 행복한 사회를 조성하게 되고 행복한 사회는 행복한 국가를 지탱하게 해주는 기본 바탕이 되어지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배려와 평안으로 묶여져야 가정이란 터전이 나라의 터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니까.
5월, 가정의 달이 떠나기 전에 가족의 위대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음을 새삼 돌다리 두드리듯 짚어보려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함께 길고 긴 항해를 하는 것이 가족이다. 이민자들에겐 가족의 힘은 위대함 그 자체이며 각별한 삶의 원천이다. 낯선 이방에서 지치고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도, 낙심으로 무너져 내릴 때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도전할 수 있도록 북돋우어 주는 것 역시 가족 사랑이다. 사회적 관계 형성이 아닌 부모, 자녀의 혈연으로 맺어진 영원한 관계의 전개로 이어지는 공동체이다.
55년 전 우리 집 할배를 만나 가정이란 새로운 스케치 북이 젊은 새댁 앞에 놓여지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참되고 성실하게 정성껏 가꾸어 가기로 했다. 하얀 캔버스에 가족을 그려 가기 시작하면서 어느 누가 지켜보더라도 은은한 감동이 느껴지는 포근한 행복이 여울지는 울타리를 든든히 세워 나가리라는 뜻을 굳게 다짐하듯 견지하며 고수해왔다. 금쪽같은 첫 딸이 태어나면서 새로운 다짐이 시작되었다.
연이어 금쪽같은 세 딸을 얻으면서 딸 부잣집 맏이부터 배필을 만나게 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차례로 사위들을 보게 되고 철 없는 장모는 쏠쏠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 먼 훗날 귀한 사위들로부터 듣고 싶은 얘기가 구성 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장인 장모님, 딸들을 구김살 없이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 딸 남매를 낳아 양육에도 소홀함 없이, 사회적으로도 입지를 굳혀가며 집안 살림도 손색없이 감당해 주는 복덩이로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꿈으로 다듬어 왔었는데 그 꿈이 선명한 그림으로 그려진 이젤 캔버스가 넉넉하니 자리 잡고 있다.
손주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할머니 야무진 꿈이 날개짓을 시작했다. 딸들을 양육할 당시 양육 버전과 금세기 양육 적응 양식은 구도부터 다른 것인데. 속 눈물이 날지 언정 적당한 경고와 맴매의 필요성을 되새기며 양육해달라고, 가족의 위대함이 자연의 위대함 보다 탁월한 우월성이 입증될 것이라고, 나이든 엄마 조언이 얼마나 구차스러웠을까. 내색 없이 손주들을 실하고 바람직하게, 참하게 잘 길러준 사위들과 딸네들 앞에 벅찬 감사로 숙연해진다.
손자 넷에 손녀 셋을 둔 외조부모 자리에서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했기에 가장 능력있는 훌륭한 선생님은 부모라고, 이방인으로 정체성 확립이 절실한 손주들에게 따뜻한 칭찬과 격려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아이들 능력과 노력에 사랑 어린 어루만짐으로 용기와 의욕 고취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진상을 올렸다. 이에 따른 교육 일환으로 가족 여행을 필수로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사위들과 약속 1호로 내걸었던 것인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빈틈없이 지켜주고 있어 감사의 마음을 거르지 않고 전하고 있다. 딸아이들을 키워오는 동안의 후회와 참회를 반면교사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온 결과물 임을 변명 삼으며.
가정이란 일엽편주를 타고 먼 바다 회로를 횡단하노라면 폭풍우도 만나고 밤하늘 가득한 별무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폭풍우가 걷히면 맑은 하늘을 만나게 되고 밤 하늘 별들을 꿈으로 새겨가며 길고 긴 항해를 이어왔다. 항해 길 끝 무렵에 상한 돛대 손질을 위해 기항지에 들러 한숨을 돌리고 있다.
막내까지 떠나 보내고 노부부가 동그마니 남은 빈 둥지도 가족이요 가정이기에 가족 울타리의 값지고 귀함을 복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음에도 감사를 드리게 된다. 손주들과 함께 행복에 겨운 딸네 가족 사진들을 열어보면 함께 했던 순간들이 담겨 있어 더는 바랄 것 없이 행복해진다.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 달콤한 추억이다. 사막 같은 세상에서 우리 대가족은 서로의 오아시스로 존재하고 있다.
창조주께 깊은 감사를 올려 드리며 가족의 위대함을 대를 이어가며 소중히 보존해 가려 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떠나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