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11월 7일 새벽 2시를 1시로 시간이 늦춰지면서 Daylight saving Time이 해제된다. 봄, 가을로 서머타임을 조절하느라 시계바늘을 앞당기고 밀쳐두고를 번복하면서 과연 일광절약 시간 조절이 유용한 제도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실과 덕을 논란하기보다 취침과 기상 시간을 통한 생체리듬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매번 겪게 된다. 한동안 익숙해질 때까지 수면시간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번번이 서머타임이 시작되고 풀릴 때마다 시간을 뺏기는지 덕을 보는지 한참씩을 생각하게 만든다. 서머타임이 과연 효율적일까. 잘못된 것을 관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을까. 일상에 불편을 주는 제도라면 과감한 시정이 필요할 것이다.
일광절약 시간이 시대적으로 필요했을 당시에는 효율적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광 절약 시간을 연중 내내 적용하자는 법안이 연방의회에 계속 상정되는 지루한 논쟁은 계속 이어지고만 있다. 서머타임이 해제되면 새벽은 일찍 깨어나고 저녁 햇살은 종전보다 서둘러 잠겨버린다. 한 시간을 풀어놓았을 뿐인데 새벽은 성큼 다가와 아이들의 아침 학교 길을 밝음으로 열어주고 귀가 길은 어둠 탓에 마음이 바빠진다. 마치 빛과 어둠이 밀고 당기며 영역다툼을 하는 것 같다. 서머타임에 묶인 빛과 어둠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순응하며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잠자리에서 잠이 깨면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눈을 감은 채 익숙한 가구를 더듬으며 웬만한 장소는 찾아가곤 한다. 어둠 속에서 옷을 찾고 때론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느라 벽을 더듬기도 한다.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가만히 눈을 떠보면 자작한 어둠 속으로 은은한 빛이 동공으로 모여든다. 어둠 속에서만 빛을 볼 수 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하고 빛은 어둠을 불러들이고 다시 어둠은 빛을 찾아 다닌다. 창조주께서 태초에 빛과 어둠을 나뉘우셨다. 어둠은 빛이 오기 전에는 어둠으로 머물 수 밖에 없듯 빛 또한 말씀이 있기 전에는 빛의 존재로 나설 수 없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빛에의 희구를 갖고 어두운 자궁에서 빛을 따라 세상으로 나온다. 한 달여는 희미하게 빛과 어두움 만을 구별하며 세상과 사귐을 시작한다. 갓난아기의 시야 속에 놓여진 어두움은 빛으로 흡수 될 시한까지 머물러준다. 빛을 수용할 능력을 얻을 때까지 아기들은 조금씩 빛을 받아들이며 본능적으로 어둠을 떨쳐내며 빛을 향하려는 발돋움을 하게 된다.
어둠은 어둠 혼자서 다니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전후좌우를 분별 못할 어둠에 둘러싸이면 어둠은 넌지시 빛을 불러들인다. 해서 새벽을 부인하는 깊은 밤은 없었던 것이다. 새벽이 있기에 그 긴 어둠을 참아낼 수 있듯 생에 끼어드는 어둠도 극복이라는 새벽이 기다리고 있기에 고난을 감수하고 견디어낸다. 고난을 견디어낸 보람의 가치를 알아가며 긴 묵상의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신실한 생의 심연을 열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어둠을 어둠으로만 접어두지 않으며 빛을 발견하고 빛을 기다릴 수 있는 시작이 어둠임을 깨우쳐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에게 주어진 삶의 몫인 것 같다.
어둠의 끝자락에서 잡게 되는 빛 줄기라서 절대의 어둠 완벽한 어둠은 없는 것이다. 빛이 다가오는 과정의 차이만 있을 뿐 어둠은 어둠으로 끝까지 버티거나 남아있지 못하고 물러나는 물리적인 변화를 어둠은 부인하지 않는다. 빛을 향한 소망은 어둠을 뚫어내는 과정을 감수하면 되겠기에 인생을 위대한 생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순리로나 시대적 역사도 그랬다.
어둠과 빛의 맞물림이 팽팽히 맞서거나 물러나는 상황의 번복이 개인에게나 국가에게 반영되어 왔지만 시대의 침윤을 지나는 동안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밀어내는 상호작용을 번복해온 것 같지만 실은 어둠이 늘 빛을 불러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어둠 스스로가 어둠을 포기하고 빛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빛은 감동으로 시대와 역사 앞에 어엿이 서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만들어 본다. 빛과 어둠의 상관 관계가 우리네 삶 속에 이미 깊이 자리잡고 있다. 서머타임에 비끼는 빛과 어둠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듯 하다. 동상이몽인지 각자도생인지 빛과 어둠이 격자 에너지를 탐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조 시간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Daylight Saving Time이 풀리는 밤, 빛과 어둠이 서로 묶이며 비켜서는 단상들을 떠오르는 대로 모아보았다. Saving해둔 한 시간을 돌려받는 셈법으로 모처럼의 느긋한 한가로움이 불러들인 무념의 여유로움에 젖어볼 참이다. 우아한 궁리가 행운을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