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한인회 한기대 부회장은 나의 절친인 김기팔, 이철향 극작가와 최불암 국민배우가 그와 중앙 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또 나의 고향인 파주와 이웃인 고양군 봉일천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6.25 당시 피난을 가다가 봉일천 공릉 나무숲에서 자다가 인민군이 처 들어와 도망친 과거가 있어 한기대 회장은 고향 친구와 같은 분인데 나에게 한인회에서 마리에타 공원 묘지 내에 한인 공동묘지를 구입하기로 했다며 좋은 기회니 구입하라고 해 아내와 의논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필요하고 또 가야할 곳인데 만약 묘지를 구입하면 이곳이 영원한 정착지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 많은 아리랑고개를 넘고 넘으며 수 없이 이사를 다니면서 정착을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정착지를 결정할 때가 됐다.
떠돌이 인생사도 너무 힘들고 지친 상태가 됐는데 살다보니 애틀랜타가 좋아졌다. 무엇보다 도시가 숲과 나무로 감싸 안고 있는 것이 아늑하고 정감이 넘치고 또 동남부 최대 정치, 경제, 문화도시로 교통의 중심지이며 4계절 날씨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와도 날씨가 그리 춥지도 않고 자동차로 북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스모키마운틴 아름답고 장엄한 산들이 펼쳐지고 사시사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 많은 지인들과 인연을 맺고 정이 깊이 들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애틀랜타 만한 지상천국도 없을 것 같다. 그 때문에 묘지를 구입하고 애틀랜타를 인생의 종착역으로 결정하고 한기대 회장을 만나 묘지를 구입하고 내친김에 관까지 구입했다. 그리고 수 많은 인생여정의 아리랑 고개의 종착역을 결정했다.
막상 묘지와 관을 구입하고나니 왠지 씁쓸하고 묘한 기분이 교차됐다. 한편 무엇인가 모를 큰 짐을 덜어버린 것 같은 홀가분한 안전감이 생겼다. 어차피 때가 되면 가는 것 준비를 했거나 말거나 가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죽은 후 남은 가족들과 친지들이 편히 쉽게 장례를 치르게 해놓기 위한 것이다.
죽으면 쓸모 없는 폐품이 되고 그 후를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기분상 한인 묘지에 묻히면 외롭지 않고 인연이 있던 혼령들과 정분을 나눌 수 있는 미련 때문이다. 어찌됐든 관도 묻히는 묘지도 구입하고 나니 애틀랜타가 마지막 정착지가 될 종착역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세상 어디에도 낙원이 따로 없고 정들면 고향이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사랑하고 가꾸면 낙원과 천국이요 에덴동산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고 아름다움을 베풀고 사랑하고 아끼고 보전하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면 아름다워질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감악산 내리막 임진강 변 파주군 적성면 가월리 촌놈이 수 많은 아리랑 고개를 넘고 넘어 애틀랜타를 지나다 정이 들어 주저앉아 쉬다가 잠들게 될 종착역이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