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김현승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오르게 하는 가을. 이 즈음에 우리에게 겸손하게 <기도의 언어>를 깨우쳐 준 구약시대의 시인 같은 선지자가 있다면 그는 <대선지자 이사야>입니다.
이사야에게 기도의 영감을 불어넣어 준 스라엘의 명 시인이 있다면 그는 지혜의 왕 솔로몬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솔로몬이 가진 시대를 초월한 우주적 영감입니다. 열왕기상 8장 41절~43절에서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땅 끝까지 이르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들까지 포함한 땅의 만민의 기도를 드리는 야훼의 성전을 <기도의 집>으로 생각한 솔로몬은 과히 그의 성경관은 우주적 비전을 가진 큰 그릇의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에 관하여 이사야 이후의 포스트 제네레이션의 영감을 가진 분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곧 영원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요한복음 2:13~22에서 성전청결의 대사역을 이루신 예수님께서 장사와 환전으로 성전을 더럽힌 무지몽매한 무리들을 일깨우실 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임을 다시금 반복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는 <정체성 혼돈>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이 시대적 정신을 몽매함에서 잠 깨울 수 있는 영감의 메시지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시대적 정신으로 깨우칩니다. 음란하고 부패하여 위엣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땅에 것만 추구하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음행을 피하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2~20) 즉, <만민의 기도하는 집>은 곧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고 세월이 전광석화처럼 쏜 살같이 지나간다 할지라도 결코 변함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기도하는 집은 곧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마음은 곧 성령의 전, 성전입니다. 이 세상, 이 땅의 만민이 기도하는 계절, 겸허한 모국어로 공허한 가을을 가득 채워야 할 시인의 마음은 <오직 기도, 오직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