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현(쥬위시타워 보석줍기 회원)
네비게이션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쥬위시 타워 아파트 골목을 들어설 때 우리 내외는 침묵으로 착잡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내 어쩌다 노인 아파트를 찾아 전전긍긍 헤매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지만 여러 친구들과 지인들이 위로하며 전해주는 경험담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우리 부부의 거처를 찾아 헤맨 것인데 이제 우리가 들어갈 순서가 되었다하여 방문하려는 것이다.
20여 년 전 자식 3남매 가족들을 앞장 세워 행복한 미국 이민생활을 꿈꾸며 이민 가방을 꾸리던 그날부터 고생스러운 이민 생활을 함께 견디어 가며 훗날을 기약했던 지난 날들이 이제는 허탈하기까지 하다.
뉴욕에서 버지니아, 그리고 애틀랜타로 이어졌던 이민 생활의 수많은 사연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자녀들의 신분 문제로, 손주들의 육아로, 거기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자녀들을 위해 버텨내며 힘들게 일했던 시간들을 이제는 다 접어야 한다.
쥬위시 타워 아파트에 방문해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 분을 만났다. 이 아파트에 사는 한인 주민들이 거의 우리 부부와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며,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면 불편했던 자식들과의 관계도 풀어지고 내 응어리진 마음도 녹아질 것이라 위로의 말을 건네 준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하나씩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안정을 갖게 되던 중, 입주 후 2달 만에 처음 방문한 아들 내외를 배웅하는데 왜 이리 날아갈 듯 홀가분한지… 그 다음날 아들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약속하여 오랜만에 손녀들과 해후를 하였다.
역시 자식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할머니 반찬이 먹고 싶다는 손녀의 말을 들은 그 다음 날부터 사들이기 시작한 음식 재료로 별별 반찬을 만들어 대는 것이 아내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는 끝없이 장을 봐 오는 우리 집이 음식장사하는 집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가 되었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 벌써 4년여가 된다. 그간 한 아파트에 사는 한인 주민들과 간단한 인사 외에 가까운 교류가 없었는데 이제는 두루두루 관심을 갖고 돌아보는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새로운 기지개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