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인문학(Humanities: 라틴어)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삶의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인간의 고유한 속성과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문학, 역사, 철학, 신학, 법학, 심리학, 사회학을 통해서 심도있는 고찰이 이루어진다. 인문학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지금 인간다운 품격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나는 정녕 인간다운 신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바라보는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 사물의 현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객관성을 유지한 균형 잡힌 관점인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현실과 일치하는가. 생각은 순수한 의미를 지니게 하지만 삶의 순수한 뜻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인문학은 삶의 본질과 문제점에 대한 통찰력과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한다. 인문학에서 삶의 아름다움, 진실을 찾는 정신적인 고결함과 불확실한 삶을 견디어내는 힘을 찾는 것이다. 인문학은 합리적 사고 체계의 깊이를 더해주며 상상력과 유연성을 길러준다.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영혼과 내면을 살아 숨쉬게 한다.
인문학의 통찰력에 의해서 변화를 가져오는 인간 삶의 풍요로움은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 된다. 삶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열린 마음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삶의 변화에 의한 영향력은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혜안을 갖게 한다. 인간관계의 신뢰감을 쌓아가는 기쁨의 과정에서 사랑의 감정이 고양되지 않는가. 인문학에서 깊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소통과 사랑의 감정이다. 인격적 신뢰의 바탕에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랑의 친화력이 빛을 발한다. 인격과 마음이 만날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시선과 신선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삶의 아픔과 고통의 순간,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바른 선택과 현실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분별력을 키우게 한다. 분별력은 자신의 참모습을 생명력으로 충만케 하려는 의지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영혼과 감정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참 자아의 표상이 될 것이다. 참 자아가 생명력의 빛을 드러내는 순간 마음에는 삶의 열정과 확신으로 가득 차오르게 된다. 인문학에서 삶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지혜를 배우게 되는 모습이 이러하리라. 이러한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삶의 본질을 자각할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은 활기찬 생명력의 발현이 되어 건전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는다.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나가는 열정적인 가치관에 의해 올바른 삶이 전개됨은 물론이다. 인문학은 우리 삶에 어떤 유익함을 주는가. 인문학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우리 삶의 다양한 표현이 설명하기 힘든 숱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편견과 위선, 저급한 욕망, 불의와 이념에 의한 미움, 분노, 증오, 광기와 무질서, 폭력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얼룩진 삶의 어지러운 문제점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도덕적 삶의 능력이 회복되어야 할 절실한 때가 아닌가. 인문학은 인간의 불의와 타락과 혼란한 삶의 모순이 만연한 균형을 잃은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는 고발정신을 지니고 있다.
1923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이미 그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이렇게 갈파했다. 그의 시 ‘재림: The Second Coming’에서 “사물은 분열되어 있고, 중심은 유지될 수 없고 단지 무질서 만이 세상에 널려 있도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공의가 파괴된 균형을 잃은 혼탁한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인문학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인간 삶의 본질이 퇴색한 이 사회에서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생명력 있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함이 아닐까? 인문학의 향기가 그윽한 만남의 향연에서 삶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는 진지한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