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태풍 프레드가 몰고온 비바람이 종일을 몰아치더니만 다음 날, 상큼한 바람기에 더없이 푸른 코발트빛 눈부신 하늘이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 만큼 경쾌하게 드리워졌다. 맑은 일기를 명분 삼아 가까운 몇몇 분이 차타후치 강가에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묵혀있던 이야기가 고삐 풀린 듯 무르익어갔다. 담소 끝에 돈에 대한 논제로 대화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기조를 열어가셨다. “재물이란 삶을 편리하게는 하겠지만 행복 보장은 가늠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전제가 우물안 개구리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네요. 어차피 한 세상 살다가는 것인데 누리고 살다가면 금상첨화가 아닐까해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은 가진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요,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돈 만한게 없습디다. 속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돈이 좋긴 좋더라구요.” 만사가 돈이 관건이었나 싶다.
50대에 들어선 중견 샐러리맨 하소연이 이어진다. “있는 것들이 더한 법이더라구요. 있는 것들 만행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존속할 것이고, 가난에 떠밀려 아름다운 사랑이 돈이란 홍수에 떠내려가는 슬픔도 즐기더라는 겁니다. 있는 것들의 비교하는 유세가 평범하게 살고 싶음을 마구 짓밟아놓고도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넌즈시 심어주면서 되레 열등감으로 매도하더라는 겁니다.” 하얗게 질린듯 열번을 토한다. 두서없는 표현이라 연유도 모른 채 고개가 끄덕여진다.
60대 초반 간호사이신 분의 조용한 열변이 시작됐다. 생면부지 한인으로부터 아연실색할 일을 당하셨단다. 눈물까지 글썽이신다. 근무하는 병원 입원실 환자로 일면식도 없음에도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함부로 하대를 하더라는 것이다. 환자 개인이 고용한 것처럼. 별도 통역이 필요없다는 것이 빌미가 된 셈이었을까. 세상은 가진자의 갑질 추태가 만연해 있다. 가진자임을 드러내야하는 조금 덜 가진자는 마치 자격미달로, 덜가진 부모는 무능한 부모로 치부되는 슬픈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가진 것이 무겁다는 유세가 상대를 대하는 태도로 결정되는 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입성과 핸드백을 불쾌한 시선으로 스캔하듯 훑어보고는 아예 계층을 만들어버리는 극히 무지하고 위험한 판단을 서슴치않는 세상이 역겹고 한심하다.
성공의 척도로,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부를 내세우는 것은 어디 까지나 가진자들의 주관적 판단일 것이다.
‘세상이 어찌될려고’ 한결같이 합창처럼 이구 동성이 된다. 돈에 관한 무수한 명언들이 예로부터 흘러왔지만 우이독경이 되고만 꼴이다.
돈하면 떠오르는것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다. 돈을 굳이 터부시할 이유는 없지만 돈의 병폐가 만연해있는 현실이라서 돈이 인격을 대변하기도 하고 사람 인성까지 미화시키는 궤변을 부끄러움으로 알지 못하기에 언급조차 껄끄러워진다. 돈이 존재가치를 대변해 주는 척도가 된 세상을 살고있다. 돈이 안되는 일도 해가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과연 도래하게 될까.
하긴 햇살 한 줄기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디오게네스에 비견될 수는 없겠지만, 작은 잘못조차도 가진것이 짧은 자들은 법이라는 잣대앞에서 죄로 단정받게 되지만 권력과 부가 적용되면 죗값이 유야무야 되어버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돈이 있으면 걸음걸이도 힘차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존심을 휘두를 수 있단다. 풍부와 결핍의 관점 잣대를 바로 세울수만 있다면 세상살이가 덜 피곤할 것 같은데 풍부에도 결핍에도 자족과 감사로 초연할 수 있는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은 곤고한 세상이다.
현대 사회는 결핍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풍요가운데 인성 결핍이 더 큰 문제를 안고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축적된 부가 삶의 수단이지 결코 권력의 신봉 존재가 되어서는 아니될 터인데. 돈에 대한 초연이 행복의 기점이요 행복은 오로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결핍으로 파생된 불행은 바르지 못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감사할만큼 가졌는데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충족시킬 방법은 없는 것이니까. ‘The Gl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반대편 잔디가 항상 푸르다는 말처럼 우리 속담에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했다.
강 건너 잔디가 푸르듯 멀리에서 바라본 산세가 아름답기 마련이다. 산길을 걷노라면 쓰러진 나무 등걸이며, 발길에 걸리는 나무 뿌리에 크고 작은 바위며 돌멩이들이 눈에 들어오듯 부를 축적한자들이나 유명세를 타고있는 알려진 사람 중에서도 존경하기에 민망한 경우가 다반사다.
지식으로 예술, 부로 명성을 얻었다 해서 남다른 특출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에 대한 초연의 가능성에 정답이 있을까마는 돈보다 숭고하고 고결한 품성이 만들어낸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남은 날들을 지금처럼 여념없이 살아가려 한다. 자족의 기쁨도 놓치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