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피곤을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기 전에 이 피곤이 극복된 삶에 관해서 성경은 어떤 사진을 그려 주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피곤을 극복한 삶을 성경이 어떻게 제시하고 있느냐면 (이사야40:31)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사상을 강조할 때 그리고 말할 때나 쓸 때. 종종 병행법을 사용합니다. 이를테면 병행법은 이런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이것이 한 문장 입니다. 그러나 두 개의 문장은 꼭같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쓰여진 것에 불과 합니다. 이것을 병행법이라고 부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종종 우리는 이 병행법을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여기에서 첫째로는, 독수리의 날개치며 울라감 같을 것이요. 둘째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셋째로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피곤이 없는, 피곤을 극복한 사람의 삶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반복법이 사용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홍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이해 하는데는 유대인 랍비들의 이해 방법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해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유대인 랍비들은 앞에서 이야기 한 이사야 40:31절의 말씀을 해석할 때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즉 이것은 단순하게 피곤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반복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이것을 삶의 세 가지 상황속에 비유합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상황이 가능합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날아가야 할 상황이 필요합니다.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같은 것이요.” 날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우리의 삶의 거리에 종종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사방이 막혔을 때, 동서남북이 다 막혀 있을 때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모든 형편이 내게 절망을 선언 할 때,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탈출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나는 것입니다. 날개를 만들어서 날아가면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달려가야할 상황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내 모든 에너지를 다하여 힘을 다해서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살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새벽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달려가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삶의 상황이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셋째는 걸어가는 상항입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상황입니다. 우리는 걸어가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는 것, 이 해석 방법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이 믿음의 삶이 우리의 힘든 삶을 탈출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