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산책길을 나서다 보면 겨울 안개가 자욱할 때가 더러 많다. 거리도 외등도 나목들도 짙게 드리운 안개로하여 실루엣이 되어 가물거린다. 세상이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뿌옇다. 지척을 분별할 수 없으리만치 농도 짙은 안개가 나목 사이 사이를 휘돌고 있다. 정오가 되어서야 자욱했던 안개의 승천이 시작되고 나목의 자태도 미세한 붓질로 그려진듯 고운 선율처럼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폭의 산수화를 넘어 거대한 수묵화 캠퍼스가 펼쳐져있다. 한나절 동안을 안개가 머물다니, 근래 들어 보기드문 일이다. 뿌연 안개 속으로 표적처럼 내 모습을 세워본다. 어찌어찌 어울려보고 싶은 것은 어인 탓일까. 난무하는 안개 속을 헤집고 걷다보면 어느새 안개로 하여 마음이 삭여지고 ‘그래, 그래 괜찮아, 잘 살아왔어’ 토닥여 주시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한다. 빛살같은 은총이다. 충만한 감사가 하루, 하루들을 위한 순박하고 맑은 기도로 이어질 수 있는 기적을 잉태하게 된다. 습기 많은 수증기를 품은 대기가 지표면 가까이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게 되면 기온이 이슬점 아래로 내려가고 물방울로 응결된 수증기 알갱이들의 어우러짐이 안개의 실체이다. 해오름이 시작되고 대지가 훈훈해지면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안개에 둘러싸인 공원 벤치에 앉아 휘돌아가는 안개 풍광을 지켜보노라니 마치 거대한 동영상을 보는 듯 하다. 세상도 온통 짙은 안게에 둘러싸여있는 것 같다. 국제 정세도, 몸 담고 있는 미국 정세도 그러하려니와, 두고 떠나온 고국 또한 운무에 싸인 외로운 섬처럼 느껴진다. 지구상 어디든 사람이 호흡하는 곳이면 인종 불문, 지역 불문, 개인이나 종족에게는 독보적으로 지닌 품성이 있다. 변하지 않는 태생부터 지녀온 전유물 처럼 삶의 무게에 필적할만한 걸맞은 고유한 됨됨이와 기질을 유지하며 세상 곳곳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불시에 엄습하는 천재지변이나 재해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게되면 어떤 형질로 바뀔지 실로 겉대중이나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얼룩이 부지기수다. 긴박한 상황에 처하게되면 드러나지 않던 실체가 적나라한 존재의 허상들로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코로나19 발생 진원지 부인을 시도해보려는 중국의 모호하고 확연치 않는 태도가 서서히 자락을 거두어 들이는 안개와 비견해 보게 된다.
삶이란 공간을 채워가노라면 숱한 일들을 겪게되고 사연도 많을 수 밖에 없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여 작금의 현실은 긴박함에 처해있다. 여러 상황들이 연출되는 간극 사이로 평소와 다른 인생들의 실체가 적나나하게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고 존재의 허상들이 부각되거나 노출되고 있다. 안개 같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뜬구름처럼 파악되지 않은 모호한 언어들이 나돌고 개념없는 말과 행동의 난무가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듯 하다. 고국 또한 분명치 않은 혼돈과 애매모호함으로 책임감 없는 발언으로 무마하려 들거나 어정쩡하고 용두사미 같은 정국의 행태에 지친 국민들은 할 수만 있다면 이민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을까. 입법, 사법, 행정부가 분명하고, 확실한 발언와 정책으로 보여주기를 갈망하는 국민을 도외시 해왔던건 아니었을까. 처참하고 어려움에 처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거나 해소해주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재외국민에게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나라를 책임져야할 권력자들이 내뱉는 말마다 국민들의 화를 부추기는 소리에 불과한 것임을 직시해야할 것인데.
이 제 코로나 19가 중국 다음으로 만연하고 있다는 실체와 마주쳤다. 국민들이 해외에서 격리되는 불상사를 겪고 있다. 정부와 개인 여야를 아울러 호접지몽을 겪는 형국인데도 여전히 버릴 말 투성이인 헛소리 행진에는 부끄러움이 없어 보인다. 세태가 급박해진 이 와중에 의료진들의 희생적인 참여와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착한 임대료 운동 미담이 훈훈한 소식들로 이어지면서 난국을 헤쳐나가는 국민들의 모습이 감동이요 눈물겹다. 정치인들이나 정부 당국 보다 국민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오로지 국민이 현장에서 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것이 최선의 해답으로 받아들인 한국인의 위대함이 아닐까. 정치인들의 비루한 개념적인 발언이 어찌 이리도 초라해 보일까. 안개의 날개짓 사이로 성급한 햇살이 비껴든다. 모험하듯 나도 모르게 눈 앞을 휘저어 본다. 안개가 걷힌 세상과 마주 하고 싶음에서. 인생들의 눈을 가리는 허접한 지식이나 위정자들의 흐린 판단으로 운무처럼 흐릿해진 세정 사이에도 해맑은 햇살이 찾아와 주었으면 싶다. 안개가 걷히는 명쾌한 모국으로 재외국민들의 요람이 되어지기를 기대해보려 하지만, 안개 속 같은 세상이 아파서인지 세월의 소리가 유난히 삐그덕대며 크게 들린다. 자유롭고 솔직한, 정치색이나 편견 없이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며 나라사랑으로 비롯된 비판을 보듬을 줄 아는 안개 미답(未踏)의 땅으로 존재하는 모국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