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12-08 11:12:05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카이자의 삼각형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살다 보면 떠밀리듯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변명이나 용서를 구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다. 버릴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막막함, 바로 부고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거절하고 싶은 이별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할 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 그 증거다. 갑작스럽게 지인의 부음을 접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서 뚝 떨어져 혼자가 된 듯 한 외로움, 날카로운 칼날에 가슴이 베인 듯한 아픔을 안고 떠났을 거라 상상하면 가슴이 저린다. 떠난 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한동안 온몸의 힘이 쑥 빠지는 것 같다.

두 달 전 즈음 애석한 부음과 함께 갑작스레 떠난 지인이 계속 생각난다. 고인은 생전에 편안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도 함께 하며 격의 없이 세상사를 논하던 사람이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사는 일에 바빠 한동안 잊고 지낸 사이 덜컥 이별을 맞이했다. 그의 마지막 길에 조화를 보내고, 피할 수 없는 부재를 아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 같이 공원 산책 갈래?”

마음에 온기가 필요할 때 불러낼 친구가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온 친구 역시 황망하게 떠난 고인을 아는 터라 말없이 앞장을 섰다. 산책로 사이로 고요가 내려앉은 숲, 옷 벗은 나뭇가지들의 그림자 그물망 위로 오후 햇살이 걸려 있었다.

산책로를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드니 우울함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 했다.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내 전화에 바로 달려온 친구의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통화하는 친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도 숲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 보았다. ‘그렇구나.’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함께할 벗이 있고, 열중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데, 이 세상 그 무엇에 내가 감히 침울해할 수 있으랴. 

먼저 떠난 사람들이 남기는 것은 언제나 빈자리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주고 간 선물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다른 빛깔과 느낌으로 채워야 하는 공백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빈자리조차 내 삶에 의미를 더하는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선이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카니자의 삼각형처럼, 내 의식 속에 자리한 기억들은 비 오는 날엔 빗소리로, 눈 내리는 날엔 순백의 모습으로, 우리가 함께했던 곳을 스칠 때마다 문득문득 옛 추억으로 떠오를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다 떠나게 될까? 나와 내 벗들의 마지막에 어디에 먼저 참석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예고 없이 찾아올 나의 장례식을 조용히 상상해 본다. 삶이란 결국 만남과 이별이 엮어낸 긴 서사다. 떠난 이들이 남긴 여백을 슬픔으로만 비워두지 않고, 그 자리에 고마움과 그리움의 무늬를 채워 넣는 것은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인 듯하다.

그래, 보이지 않는 선들이 모여 삼각형을 이루듯, 부재마저 추억으로 끌어안을 때, 떠나간 이들의 생애가 내 삶 속에서 가치 있게 완성되는 것이라 믿기로 하자.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칼럼] 미래는 오늘부터 시작이다

이용희 목사 “행복이 깃들리라. 홀로 있으면서도 오늘을 내 것이라고 노래하는 사람아. 내일은 최악일지라도 그것이 대체 무엇이냐. 오늘 나는 충실한 사람을 누렸도다. 평화로운 마음으

[법률칼럼] “월요일에 내면 되겠지”… 이민 서류, 하루 차이가 자격을 가른다

케빈 김 법무사 이민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마지막 날이 주말이나 공휴일일 때가 있다. 이때 “관공서가 쉬니 월요일에 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판단이

[행복한 아침] 익숙해짐의 양면성

김 정자(시인 수필가)    운전이 필수인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출근길이면 커피를 들고 차에 오른다. 시동을 건 다음 Seat Belt 장착을 하고 rearview mirro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6)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6)

SSI 수급자의 소득 불일치 경보(Earnings Alerts)와 10억 달러 과오 납금의 진실국세청(IRS) 자료 연계 시스템의 허점과 수급자가 반드시 챙겨야 할 월별 소득 보고

[신앙칼럼] 겸손과 사랑(Humility and Love, 요한복음John 14:23)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명시감상] 비로봉(毘盧峰) — 윤동주“만상을 굽어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白花)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수필] 스와니 벼룩시장에서 돌아본 애틀랜타 한인회

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회장) 새벽마다 스와니 시청 앞 광장에는 정겨운 장터가 열린다. 소박하고 허름한 나무 상자 위에는 갓 수확한 햇고구마와 무, 배추, 제철 과일들이 무심한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과 HOA,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과 HOA,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미국의 단독주택 단지(Subdivision)에 살다 보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약자가 있다. 바로 **HOA(Homeowners Association)**이다.

[내 마음의 시] 소식 없이 온 가을
[내 마음의 시] 소식 없이 온 가을

헬렌김 그렇게 뜨거웠던 어제도아무런 작별 인사 없었는데,오늘은소식없이 가을입니다. 공원에는 다람쥐가 분주하고한 여름 푸르렀던 나무들은파스텔을 거두어하나 둘 황금빚 옷을 준비합니다 

[애틀랜타 칼럼] 체면을 살려 주어라

이용희 목사 대개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을 대할 때 하인 다루듯이 명령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때. 그 자신의 인격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법률칼럼] 취업비자 10만 달러의 벽… 이제는 회사의 해고 기록까지 본다

케빈 김 법무사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유학생에게 채용 제안은 새로운 출발이다. 그러나 지금은 취업의 기쁨에 앞서 비자 정책의 불확실성부터 따져야 한다.지난 9월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