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살다 보면 떠밀리듯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변명이나 용서를 구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다. 버릴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막막함, 바로 부고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거절하고 싶은 이별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할 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 그 증거다. 갑작스럽게 지인의 부음을 접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서 뚝 떨어져 혼자가 된 듯 한 외로움, 날카로운 칼날에 가슴이 베인 듯한 아픔을 안고 떠났을 거라 상상하면 가슴이 저린다. 떠난 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한동안 온몸의 힘이 쑥 빠지는 것 같다.
두 달 전 즈음 애석한 부음과 함께 갑작스레 떠난 지인이 계속 생각난다. 고인은 생전에 편안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도 함께 하며 격의 없이 세상사를 논하던 사람이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사는 일에 바빠 한동안 잊고 지낸 사이 덜컥 이별을 맞이했다. 그의 마지막 길에 조화를 보내고, 피할 수 없는 부재를 아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 같이 공원 산책 갈래?”
마음에 온기가 필요할 때 불러낼 친구가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온 친구 역시 황망하게 떠난 고인을 아는 터라 말없이 앞장을 섰다. 산책로 사이로 고요가 내려앉은 숲, 옷 벗은 나뭇가지들의 그림자 그물망 위로 오후 햇살이 걸려 있었다.
산책로를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드니 우울함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 했다.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내 전화에 바로 달려온 친구의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통화하는 친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도 숲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 보았다. ‘그렇구나.’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함께할 벗이 있고, 열중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데, 이 세상 그 무엇에 내가 감히 침울해할 수 있으랴.
먼저 떠난 사람들이 남기는 것은 언제나 빈자리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주고 간 선물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다른 빛깔과 느낌으로 채워야 하는 공백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빈자리조차 내 삶에 의미를 더하는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선이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카니자의 삼각형처럼, 내 의식 속에 자리한 기억들은 비 오는 날엔 빗소리로, 눈 내리는 날엔 순백의 모습으로, 우리가 함께했던 곳을 스칠 때마다 문득문득 옛 추억으로 떠오를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다 떠나게 될까? 나와 내 벗들의 마지막에 어디에 먼저 참석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예고 없이 찾아올 나의 장례식을 조용히 상상해 본다. 삶이란 결국 만남과 이별이 엮어낸 긴 서사다. 떠난 이들이 남긴 여백을 슬픔으로만 비워두지 않고, 그 자리에 고마움과 그리움의 무늬를 채워 넣는 것은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인 듯하다.
그래, 보이지 않는 선들이 모여 삼각형을 이루듯, 부재마저 추억으로 끌어안을 때, 떠나간 이들의 생애가 내 삶 속에서 가치 있게 완성되는 것이라 믿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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