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12-08 11:12:05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카이자의 삼각형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살다 보면 떠밀리듯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변명이나 용서를 구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다. 버릴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막막함, 바로 부고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거절하고 싶은 이별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할 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 그 증거다. 갑작스럽게 지인의 부음을 접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서 뚝 떨어져 혼자가 된 듯 한 외로움, 날카로운 칼날에 가슴이 베인 듯한 아픔을 안고 떠났을 거라 상상하면 가슴이 저린다. 떠난 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한동안 온몸의 힘이 쑥 빠지는 것 같다.

두 달 전 즈음 애석한 부음과 함께 갑작스레 떠난 지인이 계속 생각난다. 고인은 생전에 편안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도 함께 하며 격의 없이 세상사를 논하던 사람이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사는 일에 바빠 한동안 잊고 지낸 사이 덜컥 이별을 맞이했다. 그의 마지막 길에 조화를 보내고, 피할 수 없는 부재를 아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 같이 공원 산책 갈래?”

마음에 온기가 필요할 때 불러낼 친구가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온 친구 역시 황망하게 떠난 고인을 아는 터라 말없이 앞장을 섰다. 산책로 사이로 고요가 내려앉은 숲, 옷 벗은 나뭇가지들의 그림자 그물망 위로 오후 햇살이 걸려 있었다.

산책로를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드니 우울함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 했다.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내 전화에 바로 달려온 친구의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통화하는 친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도 숲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 보았다. ‘그렇구나.’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함께할 벗이 있고, 열중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데, 이 세상 그 무엇에 내가 감히 침울해할 수 있으랴. 

먼저 떠난 사람들이 남기는 것은 언제나 빈자리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주고 간 선물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다른 빛깔과 느낌으로 채워야 하는 공백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빈자리조차 내 삶에 의미를 더하는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선이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카니자의 삼각형처럼, 내 의식 속에 자리한 기억들은 비 오는 날엔 빗소리로, 눈 내리는 날엔 순백의 모습으로, 우리가 함께했던 곳을 스칠 때마다 문득문득 옛 추억으로 떠오를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다 떠나게 될까? 나와 내 벗들의 마지막에 어디에 먼저 참석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예고 없이 찾아올 나의 장례식을 조용히 상상해 본다. 삶이란 결국 만남과 이별이 엮어낸 긴 서사다. 떠난 이들이 남긴 여백을 슬픔으로만 비워두지 않고, 그 자리에 고마움과 그리움의 무늬를 채워 넣는 것은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인 듯하다.

그래, 보이지 않는 선들이 모여 삼각형을 이루듯, 부재마저 추억으로 끌어안을 때, 떠나간 이들의 생애가 내 삶 속에서 가치 있게 완성되는 것이라 믿기로 하자.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살다 보면 떠밀리듯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변명이나 용서를 구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다. 버릴 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가입 전에 꼭 알아야 할 용어 정리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가입 전에 꼭 알아야 할 용어 정리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에 처음 가입하거나 플랜을 변경하려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바로 ‘용어’다. 파트 A, B, C, D부터 시작해 메디갭, 프리미

[애틀랜타 칼럼]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이용희 목사 “나의 실패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나의 큰 적이요 비참한 운명의 원인입니다. “이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있던 프랑

[법률칼럼] 미 상원의 ‘이중국적 전면 금지’ 법안… 한인사회가 주목해야 할 진짜 의미

케빈 김 법무사 미 연방 상원에서 미국 시민권자의 이중국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미주 한인 사회의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만약 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바나의 가을 풍경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사바나의 가을 풍경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지난 10월 30일 섬기는 교회 시니어 61명이 이틀간의 일정으로 사바나 여행길에 올랐다.현재로부터 시공을 초월해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믿음은

[신앙칼럼] 임마누엘 예수의 모략(The Conspiracy Of Immanuel Jesus, 이사야Isaiah 7:14)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사야의 예언은 곧 하나님의 모략이며, 임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7] 어머님이 동사라면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7] 어머님이 동사라면

신은철 (상략)어머님 일생몸의 시간은 매일매일 반복된 시계 시간이었지만맘의 시간은 순간마다 새로운 삶의 시간,아침에 묻는 말씀 “오늘은 무엇을 배우지?”저녁에 묻는 말씀“오늘 배운

[행복한 아침]   남기고 싶은, 남겨야 할

김 정자(시인 수필가)       부지불식간에 한 해가 지나가 버리고 마지막 달 12월 앞에 섰다. 마지막이란 말 앞에 서게 되면 언제든 숙연해 진다. 하루의 마지막, 한 주간의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날 연기생활을 함께 했던 이순재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나먼 미국 애틀랜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인의 명복이나 빌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향수

정지용 시인​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해질 무렵)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