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빠가 아빠가 되고 긴 노정동안 길동무가 되어 세월과 뒹구르다 할배 할매가 되기까지 함께 해 온 여정의 한담 보따리들이 자식들이 떠나버린 빈둥지 마다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노부부들이 함께 견뎌온 길엔 평온만 머무른 것이 아니었을터. 먹구름이 일기도 하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피에로가 되기도 했고, 넘어졌다 일어나는 오뚝이가 되기도 하면서 웃지못할, 울지못할 에피소드들이 한아름일 것이다.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시는 목사님 설교 말씀에 따라 아내를 살갑게 사랑하게 되었다는 어느 영감님의 간증이 사랑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금혼을 넘긴 영감님과 할멈은 이미 남자와 여자가 아닌 생존을 위한 동반자요 편안한 짝이 되어 있음이다. 듣기좋은 말로 금술 좋다는 말을 들을때면 서로가 안아야했던 상처가 떠오르고, 서로에게 떠맡낄 수 밖에 없었고 받아 안을 수 밖에 없었기에 생채기가 상흔이 되어 흠집으로 남겨졌지만 아프다는 비명은 수그러들고 그럴수도 있지라는 변천사를 겪는다. 마치 마주보며 줄다리기를 하듯 이쪽이 당기면 저쪽이 넘어지고 저쪽이 줄을 느슨히 놓아도 이쪽이 넘어지는, 팽팽하게 서로 당기며 버티기 시작하면 끝가지 해보자고 덤비는 줄다리기 같은 것. 기운이 진해지고 다투는 것 조차 귀찮아지면 상채기 조차 떠오르지 않는 무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생을 거두어들일 준비로 일상들을 가다듬어보는 시간으로 접어든다.
어 느 날인가 부터는 잠결에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고, 설거지하는 순서를 알려주고, 밥 짓기도 해보고 국도 끓여보라고 할 땐, 아내의 은근한 예견임을 눈치채게 되는것이 해로한 부부의 애틋함이다. 서로의 만남을 악연이라 우긴다한들 섭섭하지 않는 성숙에 이른 노부부 표정엔 알알이 영근 사랑이 고여있어 정스럽고 애잔하기까지 하다. 식사준비를 다 해두어도 혼자서는 밥을 먹지않는 남편. 남편이 함께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바깥을 나서지 못하는 아내. 부부 사자성어가 평생웬수와 천생연분이라 꾸역꾸역 우기다가도 어쩌면 할배더러 아저씨라고, 할매더러 아줌마라고 부를 날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아 저녁 찬거리에 생각이 모아지는게 아내의 자리이다. 아이구 저 화상 내가 이뻐서 데리고 사는줄아나 하다가도 점점 느려지는 걸음걸이가, 조금만 걸어도 숨차하는 모습이 마음에 결리고, 손에 힘이 없어 그릇을 깨먹어도 애처로움이 앞서는 것이 할아범의 자리이다. 다른 별에서 살아온 것 같은 허무감이 밀려오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저런 영감탱이를 왜 만났을까 하다가도 운전대 잡는일도 조심스러워지고, 산책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은 영감님이 안쓰러워지는 것이 할멈의 자리이다.
부모와 보낸 시간보다 겹으로 더 살아온 노부부의 고해성사를 들여다 보는듯 하다.
멋 모르고 서로가 홍꺼풀이 씌어 만났고, 마음 놓을새 없이 세월에 떠밀리듯 정신없이 살다가, 필연이라 우기며, 가엾어서, 차마 못 버려서, 차마 두고 도망치지 못해 살아오다, 참고 견디어준 것이 고마워 살았다는데 어렵사리 등 긁어줄 사람이 없어 그냥 살아간다고. 이제서야 웬만한 핀잔쯤은 사랑가로 들려오고 잠깐이라도 보이지않으면 진땀이 난다는 할배와 할매의 사랑이야가 기슭으로 밀려드는 잔잔한 파도처럼 가슴이 시려온다. 남남이 만나 상전벽해를 견뎌내며 서로의 몸이 닳아지고, 건강이 이지러져 가노라면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서로를 위해 서로의 너로 살아왔기에 나의 완성이 있음을 늦게야 아주 늦게야 깨닫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온 것을.
산 넘고 물 건너 강기슭에 이르다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던 노정의 발자욱들이 종국엔 나음도 부족함도 없이 비등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부부란 것이었다. 앞만 보고 갈때는 보이지도 않으려니와 돌아볼 여력도 없었던터라 황혼이 깃든 언덕배기에 올라서야 비로소 돌아보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여정이었던 것을. 동행하면서 살았는데도 아닌 것 같은 간극과 틈새를 두면서도 외홀로 느낌이 되지 않는,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되 서로에게 견재나 간섭이 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엔 음악이 흐르고 동화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운함과 껄끄러움이 스치더래도 서로에게 항상 당당하며 당신밖에 없노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마치 생의 역풍을 만난듯하다. 한 평생 밥상 차려주고, 자식 낳고 키워주어 아버지자리 만들어주고, 할아버지가 되게 해주었는데, 철저히 예속된, 주권을 상실한 종속국처럼 오로지 하나 뿐인 마음 껏 누리는 소유로 삼았던 아내가 아니었던가. ‘언짢은 말도 삼켜주는 아버지 같은 오빠 같은 남편 어디 없을까’. 남편을 돌아본다. 축구 경기에 몰입한 영감님은 초생달 눈이되어 응원에 열중하고 있다. 유정한 풍경이다. 걱정시키는 아이도 없고, 건강도 아직은 괜찮음이요, 가고 싶은 곳도 찾아다닐 수 있을 만큼 정신도 맑음이요 지금이 가장 편안한 마음인데, 지금 껏 써왔던 부부 여정의 진면복이 나그네 여정이면 어떠하리. 이 땅의 순례자요 손님같은 길손 이야기로 여념없이 채워져 갈 것까지도 감사해야할 덕목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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