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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귀양 간 정약용이 연 새로운 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09-19 17: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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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丁若鏞)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정약용은 스물두 살에 소과 시험인 생원시에 합격, 스물여덟에는 대과인 문과에 급제했다. 20대에 대과까지 패스하는 것은 흔치 않았다. 그는 병조참의, 황해도 곡산부사, 부승지 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정조의 신임까지 얻었으니, 그의 앞날은 푸른 하늘처럼 높고 맑기만 했다. 

그런데 서른아홉 살 때부터 정약용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은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노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이 1801년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다산은 평생에 세 번의 유배 길을 떠났다. 하지만 한림(翰林), 즉 예문관의 검열이 되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으로 떠난 첫 번째 유배는 일주일이 채 못 되어 끝나기에 유배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가슴 아픈 이별을 뒤로하고 천리 먼 길을 걸어온 유배객을 기다리는 것은 매서운 겨울바람과 백성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큰 독소로 여기고 가는 곳마다 문을 부수고 담장을 무너뜨리며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강진읍 동문 밖 주막의 노파가 내준 허름한 방 하나에 거처를 정한 다산은 억울한 유배의 억눌린 심정을 잊고 이제야 학문에 전념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생각이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함이 있다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용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엄숙하게 해야 한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많다면 그치도록 해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후중(厚重)하게 해야 하니 후중하지 못하면 곧바로 더디게 해야 한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명문가의 고위관료가 반대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남녘의 궁벽한 곳에 유배오고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여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과 용모, 언어와 행동에서 의로움에 합당하도록 하겠다는 그의 다짐에 절로 고개가 숙여 지고 어떠한 굴욕과 탄압 속에서도 마음만은 자유를 만끽하며 금욕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산의 당당한 태도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 시기에 그가 남긴 글을 보자.   

“아침에 햇볕은 먼저 받는 곳은 저녁때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듦도 빠르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다. 운명은 돌고 돌아 멈추지 않는 것이니 뜻이 있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 때문에 청운의 뜻까지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 속에는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이 있어야 하니 두 눈에 천지를 품고 두 손에 우주를 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산수를 벗 삼아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임금에 대한 흠모의 정을 노래한 연군가를 부르며 서울로부터의 해배 소식을 학수고대하던 보통의 유배객들과는 달리 핍박받는 백성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 바탕하여 '수기(修己)'로서의 육경사서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치인(治人)으로서 국가의 총체적 개혁서라 할 수 있는 <경세유표>와 목민관이 지켜야 할 사항을 적어놓은 <목민심서>등을 저술한다. 

죽기 2년 전인 일흔세 살의 고령에도 유배시절 저술했던 상서(尙書, 일명 서경)를 개정 보완했던 다산에게 우리는 참다운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지식인이 세상에 전하려고 책을 펴내는 일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해서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신경 쓸 것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너희들은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설령 적대시하던 사람이라도 그와 결의형제를 맺어야 한다.”

오랜 유배 생활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평생을 통하여 중단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탄생한 것이다.

그가 남긴 저서는 약 500권이다. 저술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기간은 18년간의 유배생활이었다. 아무리 유배 중이라 시간이 많다 해도, 500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을까?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검찰청)의 보고서나 재판 서류를 근거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정약용은 자기에 대한 현실 권력의 법적 평가를 무력화시키고 미래 권력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자 그토록 치열하게 글을 썼던 것이다. 죽어서 승리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서도 얼마든지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 것이다. 

500권의 책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약용은 이미 세상을 이기고 또 이긴 것이다. 그가 쓴 500권의 책은 500개의 승전비나 마찬가지다. 젊은 나이에 주군도 잃고 가문도 망한 정약용은, 길고도 지루한 유배생활 중에도 스스로를 혁명하기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 못다 한 일들을 죽어서라도 달성하고자 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역전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쓰러지면 쓰러진 채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그는 불굴의 날갯짓을 했다. 결국, 그는 새장을 뚫고 날아올랐고, 적들보다 훨씬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 정약용은 그렇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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