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독자투고]삶의 여로에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04-10 19:19:22

김건흡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독자투고]삶의 여로에서
[독자투고]삶의 여로에서

김건흡 (애틀란타 청솔시니어센터 회원)

아름다운 동행

며칠 전 집에서 스크랩 북을 정리하다가 오래 전 아내한테서 받은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누렇게 바랜 편지는 50년 전 우리가 첫선을 보던 때의 추억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당신의 환갑을 축하드려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영락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지도 어언 30년이 지난 것 같군요. 

무더운 여름 어느 날이었지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서울 을지로 3가의 그 다방을 기억하세요?

그날 당신이 작은 어머니로부터 오후에 잠깐 시내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영문도 모른 채 근무 중에 불려나온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바로 그 맞선보는 자리였다고 했지요. 

가난한 집안 8남매의 맏아들인 당신이 나이 30이 넘도록 아직 결혼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진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가 본인에게는 알리지도 않은 채 꾸민 음모(?)였다는 것을 후에 어머니한테서 들었어요. 그래서 시어머니가 될 어머니는 그날 선보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셨지요. 

그날 첫선 자리라고 우리 쪽에서는 해외에 체류 중인 부모님을 대신해서 20여 명의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정작 남자 쪽에서는 노란 남방셔츠 차림의 당신과 작은 어머니 두 사람이 달랑 나타났으니 그때 우리 쪽 어른들의 놀라움은 어땠을까요. 저도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기묘한 첫 만남이었지요 그때 당신은 좀 까칠한 모습이었지만, 웃을 때 살짝 눈가의 잔주름이 자상하게 보여 호감(?)이 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단벌 신사인 당신이 며칠 전에 양복을 도둑맞고 당장 입을 옷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찡했어요. 그 후 양복을 새로 맞춰 입고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얼마나 멋있던지… 깜짝 놀랐어요. 그때에야 당신이 미남이라는 걸 알았지요. 

우리가 교제할 때 제가 가끔 데이트 약속시간에 늦어 약속장소에 헐레벌떡 뛰어가 보면 길가 한쪽 벽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건만 시간은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고 어느새 우리는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네요. 

여보, 사랑해요. 

당신은 근면하고 성실하고 검소한데 나는 헤프고 절약할 줄 모르고 쓰기만 좋아하지요. 당신의 노력으로 우리가 오늘날 이만한 삶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오늘까지 건강하게 살아 준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당신의 환갑 기념으로 산정호수 한화콘도에 가자는 나의 제안에 당신은 “환갑은 무슨?”하면서 펄쩍 뛰었지요. IMF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가 어렵고 온통 뒤숭숭한 때였으니 당신이 만류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저는 물러설 수가 없었어요. 

당신의 삶은 제 삶이며, 당신의 어머니는 제 어머니예요. 어머님이 그동안 미국에서 적적한 생활을 하시다가 잠시 귀국하셨는데 이번 기회에 하루만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당신도 모처럼 잡다한 일상사에서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설사 우리 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막는다 해도, 나라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우리 마음마저 위축되거나 의기소침할 것 없고, 그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절약하고 나눠먹고, 또 풍부하면 감사하면서 내 할 일 하면서 살아가는 흔들리지 않는 삶이라고나 할까요. 의연함이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삶은 아름다운 것. 우리에게 주어진 삶속에서 감사하면서 누리며 살고 싶어요. 아직은 당신이 건강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고, 든든한 두 아들이 있고, 또 마침 미국에서 연로하신 어머님과 동서도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정말 제 마음은 부자가 된 것 같아요.

“하루해가 이미 저물어도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고, 한해가 곧 저물려 해도 오히려 귤 향기가 더욱 꽃답다”는 옛말이 있지요. 이제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황혼의 낙조가 찬란한 마지막 빛을 발하듯 우리의 노년이 더욱 빛을 발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보 사랑해요! 

당신의 영원한 사랑 드림.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구나.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언제 한번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고왔던 얼굴이 이제는 쪼글쪼글하다. 그래도 나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수십 년 세월 내 옆에 있어준 나의 일부, 영원한 내 편이 바로 부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50년간 서로에게 길들여져 있어 누구와 바꾼대도 지금같이 편안할까. 그러니 이 세상에 머물도록 허락받은 그 시간까지 더 사랑하며 살고자 한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 죽음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모든 생명 있는 자의 절대적인 원칙대로 세상에 태어났기에, 기약된 이별의 순간이 우리에게도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아내를 좀 더 아끼며 살려고 한다. 청솔시니어센터에 가면 항상 눈길이 가는 문구가 있다.  ‘아름다운 동행!’그래요. 우리 손잡고 함께 걸어요.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I-94 한 줄 뒤에 숨은 ‘새 감시 시대’

케빈 김 법무사 최근 한국 언론에 “무비자 I-94 정보 제출, 얼굴인식·소셜미디어·DNA까지 확대 검토”라는 제목이 등장하자, 많은 분들이 “미국 가려면 공항에서 DNA까지 채취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8] 구르는나무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8] 구르는나무

이성열 사막을 가로질러 기어가듯이데굴데굴 구르는 나무를 보고비웃거나 손가락질하지 마어떤면에선 우리의 삶도거꾸러져 구르는 나무 같지짠물 항구도시 인천에서 태어나아버지를 따라 무논과

[행복한 아침]  겨울 안개

김 정자(시인 수필가)       이른 새벽. 안개에 둘러싸인 도심은 마치 산수화 여백처럼 단정한 침묵으로 말끔하고 단아하게 단장 되어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만상은 화선지에 색감을

[추억의 아름다운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全文)

만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

[한방 건강 칼럼] 불면증, 한방치료와 접지족욕(Groudning Foot Bath)의 시너지
[한방 건강 칼럼] 불면증, 한방치료와 접지족욕(Groudning Foot Bath)의 시너지

최희정 (동의한의원 원장) Q:  CJ, Maybe it does not work for me! I still sleep less than 6 hours!A:  Be patient

[신앙칼럼] 은혜의 환대의 모략(The Conspiracy Of Gracious Hospitality, 마태복음 Matthew 7:1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환대(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환대(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환대의 대가,

[추억의 아름다운 시] 우리가 서로 사랑 한다는것

김수환 추기경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나는 행복합니다.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나는 행복합니다.꽃이랑, 보고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아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살다 보면 떠밀리듯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변명이나 용서를 구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다. 버릴 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가입 전에 꼭 알아야 할 용어 정리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가입 전에 꼭 알아야 할 용어 정리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에 처음 가입하거나 플랜을 변경하려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바로 ‘용어’다. 파트 A, B, C, D부터 시작해 메디갭, 프리미

[애틀랜타 칼럼]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이용희 목사 “나의 실패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나의 큰 적이요 비참한 운명의 원인입니다. “이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있던 프랑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