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 38년(12)
길 잃은 촌 놈
지천( )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수 많은 젊은 남녀들이 인민 공화국 만세를 부르는 서울 거리 6월 28일 하룻밤 사이 인민군 세상이 된 서울에 이렇게 많은 빨갱이 공산주의 자들이 있을 줄은 상상을 못했다.
단성사 큰길을 돌아 한참을 걷다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어 비집고 들어가 보니 총상을 당한 국군이 피 투성이가 된 채 사경을 헤메고 있다. 병원으로 가 치료를 하면 살 수 있을텐데 죽을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아무도 도울 방법이 없다. 가슴이 아프다. 몇번인가 그런 참상의 현장을 목격한 후 나는 발길을 돌려 진형구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낯선 가정부밖에 없는 집 이지만 갈곳은 그 곳 밖에 없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아저씨 집이 있는 단성사 까지는 쉽게 찾아 갔으나 그 다음 골목길 부터는 거기가 거기 같고 길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길을 제대로 찾은 것 같고 틀림없이 그 집 같은데 가까이 가 보면 다른 집이다. 그렇게 이골목 저골목 이집 저집을 헤메다 보니 더욱더 혼돈이 가중되고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미칠 지경이다. 도시라면 작은 문산 정도 밖에 모르는 촌놈이 복잡한 종로 중심지에 있는 아저씨 집을 나올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표시를 해 놓거나 집 주소를 적어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경솔함과 부족함과 무지 무능한 때문에 아저씨 집을 찾을 수가 없다. 모든게 내 잘못이다. 오후 3시가 넘도록 집을 찾다가 지쳐 버렸다.
나는 진형구 아저씨를 원망했다. 자기네 식구들만 데리고 피난을 가고 친구의 아들인 나를 버리고 간 것이 야속했다. 어리석게 서울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그리고 바보같이 가정부에게 밖에 나갔다 온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와 버린 것도 후회가 됐다. 아저씨 집을 찾는것을 포기하고 생각 해낸 것이 신촌역 철환이 형 친척 집이었다. 신촌역 인근은 시골과 같아 집을 찾기가 쉬었다. 신촌역만 찾아서 가면 된다. 걸어가며 주머니에 있는 현금을 손으로 꼭 쥐고 확인했다. 등록금을 미루고 안 낸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돈은 유사시 사용 할 수있는 귀중한 보험금이다.
신촌으로 가는중 인민군과 인공기를 든 학생과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며 열광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또 불 바다가 됐다는 고향 가월리와 부모님들은 무사한 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신촌역에 도착해서 언덕 위에 있는 철환이 형 친척집을 발견하고 이제 살았구나 하고 달려가 그 집에 들어서니 철환이 형이 뛰쳐 나오며 반갑게 맞아주며 기차가 폭격을 당한 후 너를 찾지 못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느냐며 그 때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고 내가 기차를 타고 다시 금촌으로 갔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전쟁터로 혼자 갔느냐며 혀를 찼다.
다음날 형과 나는 인민군 세상이 된 서울 거리로 나가 동정을 살펴 보았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인민공화국 만세와 함께 위대한 김일성 장군이 서울을 해방 시켰다며 남조선 인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복귀하기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서울이 인민군에게 정복된 이상 대한민국 정부는 끝났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 했다. 또 가난한 친척집에 계속 있을 수도 없어 고심을 거듭 한 끝에 일단 가족을 찾아 고향으로 가기로 결정 했다. 갈 곳은 고향밖에 없고 가족을 찾아 함께 생사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