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애틀랜타칼럼] 미소전쟁

지역뉴스 | 사설/칼럼 | 2017-08-24 10:10:54

애틀랜타칼럼,윤의숙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난 너무 건강이 안 좋아서 나가 놀지도 못하고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 이였다. 어른이 가방을 들어서 학교까지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 바쁘신 담임 선생님까지도 도와주셔서 겨울은 난로 옆과 해가 드는 곳에 앉혀 주셨다. 쉬는 시간이 되면 급우들은 신이 나서 뛰어 나갔고, 나는 그대로 책상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것이 나의 쉬는 시간 이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피검사 할 때면 바늘이 나의 온 팔을 기어 다녔고, 혈관을 찾으면 피를 짜내느라 어린 나를 쥐어 짰다.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부러운 ‘미자’라는 애는 볼만 만져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미자는 그뿐이 아니라 키도 다른 애들 보다 거의 머리 하나는 더 있는 것 같았다. 몸도 땡땡하게 다부졌다. 학교에서 미자에게 안 맞아 본 남자 애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여자 애들에게 못 되게 굴고 도망치다가 미자에게 걸리면 결국 잡혀서 맞았다. 그러나 애들이라서 그런 지 아니면 관심을 받고 싶어서인지 또 맞을 짓을 하고 줄행랑을 치다가 붙잡혀서 맞는다. 

수업 종이 울리면 애들은 통쾌한 듯 재잘거리며 교실로 돌아온다. 난 앉아서 쉬는 시간을 다 듣는다. 하루는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책상 위로 올라가 걸으며 이 책상 저 책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에게로 점점 좁혀 왔다. 교실에는 미자와 나 둘만 있었다. 미자는 나의 선망의 대상이어서 아무런 방어태세를 갖출 필요가 없었고, 미자와 눈을 한번도 맞춰 본적이 없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따뜻한 엄마의 품속에 앉은 기분으로 해를 쪼이며 쉬고 있었다. 미자는 점점 내 옆 책상까지 와서 뛰었으나 난 그럴수록 더 부러웠다. “와! 저 기운 나도 나누어 갖고 싶다” 하는데 갑자기 내 책상 앞으로 탁 뛰어 내려서 나를 겁주려고 눈에 힘을 주고 노려 보았다. 난 두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올라가 붙어 있는 미자를 보았다. '어쩜 저리도 건강할 수 있을까! 난 어떻게 해야 저렇게 힘차고 두려움도 없게 될까! 아, 부럽다’ 하면서 그 애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쇠망치 같은 미자가 내 책상 앞에 쓰러지는 것이다. 난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속은 나보다 더 약한가? 장난을 하나? 하며 몸을 일으켜 미자를 내려다 보려는 순간, 마침 애들이 미자를 부르러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뛰어 들어와서 미자를 흔들어 깨워 데리고 나갔다. 그 다음 삽시간에 온 학교에 소문이 돌았다. 누가 미자를 때려 눕혔다며 애들이 나를 보려고 몰려와서 교실 문이 미어질 정도였다. 나를 본 애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실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가버렸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무마되어 조용해졌다. 

그날 저녁을 막 먹었는데 누가 날 찾아왔다 하여서 나가 보았다. 첫 눈에 봐도 미자 엄마다. 미자와 똑 같이 생긴 아줌마가 미자 동생을 등에 업고 대문 안에 들어 와 서있었다.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도, 두려운 마음도 안 들었다. 그래도 ‘누구시냐’고 물었다. 잘 익은 토마토 같은 얼굴이 서서히 식더니 ‘네가 아무개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기운 없는 목소리에 의아한 듯 아래 위를 훑어 보더니 아무 말없이 대문을 열고 사라지셨다. 다음날 미자는 날 피했고, 쉬는 시간에 책상 위를 뛰다가 나와 마주칠 것 같으면 깜짝 놀라 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미자는 내가 공주병인 줄 알고 혼내주려고 한 것 같았는데, 나의 부러워하는 표정은 잘 읽지를 못했나 보다. 그때 난 나의 미소가 힘있고, 무서운 무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세계는 전쟁 중이다. 테러, 중동문제, 총으로 죽고 죽이는 뉴스를 듣기가 무섭다. 서로 미소를 날려 원자폭탄도 ‘꽝’ 하고 쓰러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싸우지 말고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면 지구가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날 연기생활을 함께 했던 이순재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나먼 미국 애틀랜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인의 명복이나 빌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향수

정지용 시인​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해질 무렵)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샬럿에 사는 친구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공기 포장지로 꽁꽁 싸맨 유리병 속 생강 레몬차, 일회용 팩에 담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 파트 D는 처방약 보험으로, 오리지널 메디케어 가입자나 일부 어드밴티지 플랜 이용자가 별도로 가입해 약값을 보장받는 제도다. 그러나 약값은 플랜에 따라

[애틀랜타 칼럼] 내 탓이라고 말하라

이용희 목사 우리가 일을 하다가 어떤 실수를 저질렸을 때 간혹 구실을 들어 변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관용이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2026년부터 자선기부 공제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표준공제를 적용하는 납세자도 일정 한도 내 현금 기부에 대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법률칼럼] 영주권·비자 거절이 곧바로 추방 절차가 되는 시대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들어 USCIS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영주권이나 비자 신청이 거절되더라도 일정 기간 재신청을 고민하거나, 자진 출국을 준비할 수 있는

[행복한 아침]   안녕 11월이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품고 있는 11월 끝자락이다. 가을이라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어찌 이른 듯, 가을과 겨울이 맞

[한방 건강 칼럼]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의 한방치료
[한방 건강 칼럼]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의 한방치료

최희정 (동의한의원 원장) Q:  몇 주 전부터 오른쪽 바깥쪽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왜 그럴까요?A:  팔꿈치에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팔꿈치 바깥쪽이

[신앙칼럼] 삶의 핵심(The Core Of Life, 마가복음Mark 8:27-30)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는 현하, 감사와 성탄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하신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