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집을 떠나 길 위에서 만나지는 세월과 마주하고 있다. 인생이 흐르는 물 같음을 절감하며.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는 바닷길 여정이라서 은파와 조우하는 다사롭고 편안한 해우를 음미하고 있다. 물결은 포근한 일렁임으로 곰실곰실 커다란 호수처럼 잔잔하기 그지없다. 햇살도 부드럽고 산뜻한 바닷내음이랑 짙은 바닷빛이 태곳적 자연 그대로를 품은 채 세월을 밀어내듯 유유히 앨라스카로 향하고 있다. 거대한 산지와 극한의 추위를 견디어낸 수목들이 유난히 고고해보인다. 고국의 한려수도가 연상 될 만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섬들이 흩어지듯 사라졌다가 또 다른 형상으로 유려하게 다시 모여드는 풍광을 연출하고 있어 시선을 붙든다. 번잡스럽다거나 수선스럽지 않은 알맞은 구도와 변화의 묘미를 묘사해낸 산수도의 걸작들이 이어지고 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따뜻한 힐링을 안겨준다. 선상에서 만나지는 풍경들이 오랜 준비와 다듬어진 풍광을 진솔하게 보여주기 위해 기다려준 것 같다. 깊이와 너비를 해아릴 수 없을만큼 아득하고 막막한 바다와 어우러지며 끝 없이 펼쳐지는 전망에서 잠시도 눈을 땔 수 없는 은밀한 비경의 연속이다. 수려하고 광대한 특유의 서정시가 불러들인 경관이 압도적 운치로 마음을 파고든다.
갑판 위라서 바람이 거세려니 했었는데 의외로 바람결 조차도 온화하다. 각양의 삶을 실은 크루즈 선상에서 유난히 맑은 하늘을 만나게 되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 지나가는 배들이 만들어 낸 뱃길이 문득 살아온 흔적처럼 보인다. 여행의 참모습을 발견하게되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따라 흐르고 흘러온 생의 길목에서 잠시 멈춰서서 마음을 보살피게 되는 행우한 다복함이 행복하다. 색바랜 세월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아득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인생의 길동무와 만나 50년을 함께해온 시한을 망망대해에서 한가롭고 아담한 시간을 마련하며 조용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생이 어쩌면 파도를 타듯 기울었다 올랐다 하며 살아온 것일찌도 모를 일이다 싶다. 파고의 오르내리는 리듬을 따라 수없는 반복을 거듭하는 동안 리듬을 타면서 가느다란 음조를 읊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었으니까. 오로지 내귀에만 들리는 음율이었던 것 같다. 물결의 흔들림 위에서 고단한 것들을 잊을 수 있었는지는 짚어볼 순 없었겠지만 소중한 것들을 잊고 있었을 것이고, 많은 것들을 잃었을 것이다. 물결의 반짝임이 추억 자락을 붙들고 있는 노심을 일깨워 준다. 세월의 갈피 갈피가 안타까움과 서운함 일색이다. 아쉬움보다 뉘우침과 회한을 숙고와 자각으로 고찰하는 효오(曉悟)가 현악기의 맑은 음율처럼 고물고물 피어난다.
만나기 쉽지 않은 숙연하고 현란한 바닷길에서 물결의 축제를 만난 셈이다. 다양한 인생 저마다 각기각양의 시절과 시한을 즐기는 순간들이 행복해 보인다. 4계절 옷을 준비해온 터라 크루즈 선상에서 4계절을 만날셈이다. 지금껏 살아온 온대지방의 4계절과 북극 가까이로 다가온 길 위에서 만난 4계절의 오묘함이 헤아리기 쉽지 않을 만큼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이 숨겨져있을 듯하다. 4계절을 묘사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펼쳐지는 만상을 바라보며 금혼의 휴가를 즐기고있다. 거칠 것 없는 태고의 자연상태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앨라스카에 발을 딛는 순간 싱그러운 느낌을 넘어 짙은 원시림에서 치유의 느낌까지 느낄 수 있어 더욱 풍성함을 만끽할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할 뿐이다.
원주민들이 남긴 유적지를 돌아보며 사람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람 손길이 닿이지 않은 때묻지 않은 자연을 만날 때의 소회와 몸의 감각이나 마음이 깨달아가는 숭고한 감동이 감회로 익어감을 체득하게 된다. 길 위에서 만난 세월은 친숙하기도 하고 때론 낯설기도 하지만 금혼 50년 세월의 마디진 한계 위에서 다양함의 호사를 누려보리라 벼르고 다짐을 했었는데, 이미 누리고 다 이룬 것 같다. 길 위에서 만난 세월들을 내게 가장 알맞는 행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남은 일정동안 따뜻한 안도감으로 넉넉한 추억을 담뿍 안고 돌아가리라. 여행 한 번 잘 했다로 매듭지워지지 않을 여운이 긴 꼬리를 끌고다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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