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간병의 굴레, 마음의 낙상을 경계하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1-20 09:17:21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게으름이라는 이름의 보약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우편함에 꽂힌 엽서 한 장이 눈길을 붙잡았다. 낙상 예방 콘퍼런스에서 온 초청장이었다. 그 위에 적힌 “Don't Let a Fall Get You Down (추락이 당신을 주저앉게 하지 마세요)” 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문장에 매료되어 지체 없이 참석 전화를 걸었다.

평소 부모님의 간병에 관한 상담 전화를 자주 받는다. 내용은 대개 양로원을 찾기 위한 행정적인 절차를 묻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대화의 끝은 늘 치매나 낙상 사고를 당한 부모를 부양하는 자녀들의 고단한 하소연으로 맺는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사정을 일일이 듣는 것이 때로는 버겁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절박함과 우울의 농도를 이해할 수 있는 나는 차마 전화를 먼저 끊지 못한다.

골반 골절이 있는 아흔 살 노모를 병 수발하는 육십 대 주부와 통화한 적이 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메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효도라는 책임감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깨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라는 고백에 가슴이 저릿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 홀로 모든 짐을 짊어졌던 그녀는, 정작 자신의 무릎 뼈가 닳아가는 줄도, 잠을 잃어버린 눈 밑이 거뭇해 지는 줄도 몰랐다. 덫에 걸린 듯 반복되는 간병의 굴레 속에서 그녀가 만난 것은 지독한 고립감뿐이었다. 바닥까지 탈진한 끝에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돌보지 않는 헌신은 결국 모두를 무너뜨리는 위태로운 불균형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있다. 

낙상 환자 가족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사고 전에는 참 건강하셨는데, 한 번 넘어지신 뒤로 모든 게 무너졌다"고.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낙상 자체가 건강 악화의 시작이라기보다, 그 이전에 이미 몸의 균형 장애(balance disorder)가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던 경우가 더 많다.

균형 장애란 가만히 있을 때는 평온해 보이지만, 서거나 걷기 시작할 때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증상이다. 75세 이상 노인들이 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원인이기도 하다. 노년의 낙상이 유독 치명적인 이유는 환자 본인의 고통을 넘어, 간병하는 가족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앗아가기 때문이다. 상담 전화를 끊으며 늘 깨닫는다. 원하는 것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때를 놓치면, 결국 마음에도 균형 장애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과정이다. 삶의 균형은 만족과 부족, 기쁨과 슬픔이 조화롭게 순환할 때 찾아온다. 하지만 일상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억울함과 분노를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안으로 꾹꾹 눌러 담다 보면, 비대해진 스트레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마음이 균형을 잃는다. 어디 무너지는 게 마음뿐이겠는가 육체의 쇠락도 시간문제다. 

추락은 물리적 낙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나를 잃어버리는 모든 순간이 곧 추락이다. 하지만 육체든 마음이든, 예고 없이 찾아올 그 추락이 나를 주저앉히게 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완벽하게 서 있는 상태의 건강이 아니더라도, 비틀거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향해 몸을 기울일 줄 아는 의지, 그것이 내가 고단한 상담 전화 속에서 찾아낸 삶의 진짜 근력이기 때문이다.

책상머리에 초청 엽서를 붙여 놓았다. 콘퍼런스가 끝나도 엽서의 저 문장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삶을 각성하게 할 것 같다. “ Don't Let a Fall Get You Down.”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칼럼] 미래는 오늘부터 시작이다

이용희 목사 “행복이 깃들리라. 홀로 있으면서도 오늘을 내 것이라고 노래하는 사람아. 내일은 최악일지라도 그것이 대체 무엇이냐. 오늘 나는 충실한 사람을 누렸도다. 평화로운 마음으

[법률칼럼] “월요일에 내면 되겠지”… 이민 서류, 하루 차이가 자격을 가른다

케빈 김 법무사 이민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마지막 날이 주말이나 공휴일일 때가 있다. 이때 “관공서가 쉬니 월요일에 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판단이

[행복한 아침] 익숙해짐의 양면성

김 정자(시인 수필가)    운전이 필수인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출근길이면 커피를 들고 차에 오른다. 시동을 건 다음 Seat Belt 장착을 하고 rearview mirro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6)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6)

SSI 수급자의 소득 불일치 경보(Earnings Alerts)와 10억 달러 과오 납금의 진실국세청(IRS) 자료 연계 시스템의 허점과 수급자가 반드시 챙겨야 할 월별 소득 보고

[신앙칼럼] 겸손과 사랑(Humility and Love, 요한복음John 14:23)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명시감상] 비로봉(毘盧峰) — 윤동주“만상을 굽어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白花)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수필] 스와니 벼룩시장에서 돌아본 애틀랜타 한인회

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회장) 새벽마다 스와니 시청 앞 광장에는 정겨운 장터가 열린다. 소박하고 허름한 나무 상자 위에는 갓 수확한 햇고구마와 무, 배추, 제철 과일들이 무심한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과 HOA,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과 HOA,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미국의 단독주택 단지(Subdivision)에 살다 보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약자가 있다. 바로 **HOA(Homeowners Association)**이다.

[내 마음의 시] 소식 없이 온 가을
[내 마음의 시] 소식 없이 온 가을

헬렌김 그렇게 뜨거웠던 어제도아무런 작별 인사 없었는데,오늘은소식없이 가을입니다. 공원에는 다람쥐가 분주하고한 여름 푸르렀던 나무들은파스텔을 거두어하나 둘 황금빚 옷을 준비합니다 

[애틀랜타 칼럼] 체면을 살려 주어라

이용희 목사 대개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을 대할 때 하인 다루듯이 명령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때. 그 자신의 인격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법률칼럼] 취업비자 10만 달러의 벽… 이제는 회사의 해고 기록까지 본다

케빈 김 법무사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유학생에게 채용 제안은 새로운 출발이다. 그러나 지금은 취업의 기쁨에 앞서 비자 정책의 불확실성부터 따져야 한다.지난 9월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