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새 달력으로 바뀐 지 딱 열흘째다. 달력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태엽처럼 감겨 있어서 인지 세상살이가 아름다웠 노라고 나직이 말할 수 있는 멋스러움을 부려 보기도하고 잘 살아왔는지 자문하기도 하면서 새해맞이를 했지만, 작심삼일 누를 남기지 않기 위해 새해 각오를 가다듬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아직 새해 같은 분위기라 새해 기색을 조심스레 노크해 본다. 갈무리해 둔 끈끈한 세월은 기쁨으로 직조된 조각들이며, 고단했던 조각들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망연히 들여다 보게 된다. 자신부터 사랑하자 했던 일을 적당히 밀쳐두고 지냈던 연민이 새해 햇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남은 날은 줄어들지만 땅 위에 머무는 동안 맑고 밝은 가슴으로 버티어 보자고 겸손을 무릎에 두고 시작의 끈을 조심스레 다시 고쳐 메 본다. 시니어 문턱을 넘어오면서 사랑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리지 못했던 아쉬움도 앞선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아름다움이었음을, 사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설레는 느낌이 있기에 표현하지 못했어도 추억과 하나가 되었음을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음에 감사드리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은 매일 아침 해가 뜬다는 사실만큼 만민에게 평등하다. 파스칼은 “인간은 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난다”고 했다. 새해 벽두부터 어찌 생의 마지막을 이야기 하는지 의아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시한의 길고 짧음 차이 뿐 가족 곁을 떠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이치이다. 죽음이란 준엄한 사실 앞에 항거할 수 없음이요, 피할 수도 없을 뿐더러 시기조차 알 수 없음이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 터이다. 며칠 전 신종변이 수퍼 독감으로 고인이 되신 분의 부고를 접하면서 다급해진 마음이 된다. 이토록 핵심적인 일을 일상에선 쉽게 잊고 살아가고 있음을 한번쯤 일깨워야 할 것 같아서 이다.
죽음 앞에 서게 되면서 후회하게 되는 것 들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음에 대한 휴회, 진심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함에 대한 후회, 너무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과 주변에 소홀했음에 대한 후회, 더 많이 여행을 다니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결론은 행복의 정의 실천에 초점이 모아진다. 살아가면서 제아무리 노력해도 피해갈 수 없는 어려운 과제가 있다. 생로병사 정답은 외면 할 수 없는 것. 인간은 태어나서 늙어가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음이다.
이미 새해가 열렸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낱말들이 봉곳이 도드라져 보인다. ‘의리, 인정하기, 견뎌내기. 두려움 맞서기, 내 편 남의 편 구분하기, 재 도약, 숨가쁘게 써왔던 수 많은 원고 들, 실수, 절망, 하늘을 향해 물어본 말들, 하늘의 소리를 갈구하다. 등으로 나열되고 있다. 사위지 않는 불꽃처럼 꾸준히 걸어왔다. 사뭇 정직한 단어들로 한 해 동안 몰아 닥친 강풍을 온몸으로 버티며 원고지를 채워온 키워드들이, 주어진 일이라 끊임없이 시선을 맞추며 치열하게 견디었기에 영육은 한결 여물어지는 은총을 얻을 수 있었나 보다.
매주 퇴고를 끝내고 e-mail로 글을 올리고 보내기를 누르는 순간. 마음 속 음지에 웅크리고있던 노년의 아낙이 밝은 빛으로 걸어 나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수필 속에선 온전히 잠재된 감정선 표현력이 언제나 다 쏟아놓지 못한 아쉬움을 엿보게 된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읽고, 보고, 들으면서, 깊이 사유하며 좋은 수필을 써가자고, 묻어둔 언어들을, 미쳐 꺼내지 못한 문장들을 표현해 낼 수 있도록, 독자님들과 소통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글을 남기도록 정진해야 하리라. 나이가 들수록 미음 속에 하나둘씩 묻어두는 게 많아진다. 속수무책이다.
실망스러운 내 모습과 세상은 원하는 대로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늘 겹쳐진다. 무엇을 더 내려놓아야 할까. 낮추는 연습으로 그래도 오늘 여기까지 왔다. 행복의 정의는 현재와 미래가 함께 행복해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갖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 있다고 자부한다면 누구든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덕담이든 신념이든 행복한 일상 유지라는 의무감에 시달려 보기로 했다. 깊이 고민해야 할 소중한 숙제로 삼으려 함은 삶의 기준이 어떻게 설정되든 남은 날은 살아온 날 보다 짧음이라서. 아직도 새해 같은 정월 어느 날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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