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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랑의 역주행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11-24 08:50:1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사랑의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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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반가움으로 떠들썩했던 모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중늙은이들이 서로 안부를 챙기며 철부지 아이들처럼 깔깔거렸다. 한 친구는 자신이 꼭 한턱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식사 대금 전부를 부담했고, 다른 친구는 공돈이 생겼다며 2차는 반드시 자신이 사야 한다면서 카페를 향해 앞장섰다.

 

사실,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한 친구의 마음고생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려는 계획이었다. 일 년 전 즈음, 치매 어머니를 병간호하려고 20년 근속했던 직장생활까지 접었던 친구다. 그의 모습은 마치 소금에 절여진 무처럼 처져있었다. 늘 어린애 같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센스 있는 유머로 우리를 웃게 해주던 친구의 변한 모습에서 간병이 쉽지 않은 일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모임의 대화는 치매 부모님 걱정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늙어가는 우리들의 일상과 미래를 염려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되돌아보았다. 치매 어머니 간병에, 뇌졸중 남편 병구완에, 손자들을 봐주느라 쉴 틈 없는 일상을 보내는 여러 친구들 입장을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하고 우울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엄마의 치매 증상을 견디며 힘들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상상할 수없는 기이한 행동과 끊임없이 반복하는 질문과 요구에 지쳐 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자갈길을 맨발로 걷는 듯 한 심정에서 참지 못해 짜증을 부리고 나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깊은 자책이 뒤따랐다. 나를 위해서라면 자기 살이라도 베어 먹일 양 사셨던 엄마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엄마의 치매에 쉽게 지쳐버리는 내 자신에게 스스로 죄의식을 느꼈다.

 

가깝고 편한 가족 사이에서는 간병하기 더욱 힘든 병이 치매이다. 양로원을 찾는 문의 전화의 절반 이상이 부모의 치매 때문에 고통 받는 자녀들인 걸 봐도, 치매는 노환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질환이다. 가족에게 일생을 헌납한 엄마에게 짜증을 내서는 안 되는데 하는 후회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엄마가 떠나신 후에도 한참동안 엄마 생각은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사실, 치매를 무서운 병이라고 말하는 대부분 사람은 치매에 걸린 당사자가 아니라, 그를 돌보는 가족이다. 치매 부모의 병구완을 하면서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섣불리 위로할 수도 없다. 치매 엄마를 병구완하는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몇 마디 했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엄마 한 사람 길러 봤어요?'라고 쏘아보더라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친구는 치매 부모를 병간호하는 일은 사랑의 역주행이어야 한다고 했다. 흔히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사랑이 어찌 한 방향으로만 흐르겠는가. 맞는 말이다. 지금이 바로 그 흐름을 바꿀 때이다. 자식을 향해 거침없이 흐르던 부모 사랑의 물결을 이제는 거꾸로, 부모를 향해 흐르게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평균 수면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를 사는 내게도 노환이 생기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랴. 

이런저런 힘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부모님 덕분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그 무한한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이렇듯 부모를 돌보는 사랑의 역주행이야말로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숭고한 책임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위대한 헌신이 아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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