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 가는 것이다’(We don’t grow older, we grow ripper) 화가 피카소께서 남긴 말이다. 가수 노사연이 부른 ‘바램’가사의 한 부분이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라는 가사에 공감했었다. 은발의 할머니임을 자각 하고서야 절감하는 말이 되었다. 생애의 마무리를 곱게 장식해야 할 의무감마저 들기도 한다. 나이를 계속 더하게 되면서 기억력도 까무룩 반복을 거듭하고 걸음걸이도, 동작도 후퇴일보요, 피부 또한 아무리 덧 칠을 해도 본질을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젊음의 정점을 지나면 성장은 멈추고 노화일로를 걷게 된다. 세상만사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살아가노라 앞만 보고 올랐던 오르막도 힘들었지만, 쉬울 것 같았던 내리막도 생각보다 쉬운 편은 아니다. 발목이 겹칠 수도 있음이라 내리막 경사도 만만치 않음이다. 하지만 미쳐 보이지 않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기도 숨을 고르며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얻기도 한다. 하룻길 인생길인데 내리막으로 기울고 있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마음에 달렸음이라 어느 시점이든 ‘행복 발견’에 몰두하는 것이 상책이요 노년 대비책의 지름길일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말들이 널려 있다 한들 실행에 이르지 못하면 소용 없음이라 주어진 길을 지혜롭게 묵묵히 건너가려 한다. 다행히 좋아하는 일을 붙들고 있으면 그 길이 행복의 첩경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늙음, 낡음, 익음도 한결을 이루고 있음이요 부패, 발효 숙성도 그 결은 같음 이요, 고물과 골동품 차이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하루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는 길 밖에 없음이라서 일몰을 만날 때마다 해가 꼴깍 지평선을 넘어서는 순간을 보고도 주눅들지 않기로 했다. 산책길에서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려 안간힘을 다한다. 과연 깊고 아름다운 늙음을 위한 길인지 몰두해보지도 않은 채 앞머리를 살짝 잘라볼까 하고 거울 앞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세상 모르고 앞만 보고 질주했던 오르막 길을 떠올리기도 하며 청바지 구멍을 손가락으로 넓혀 보기도 하지만 도토리 키 재기요 거기서 거기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중부지방 똥배는 유전자 변이 없이 대물림 현상의 증거 자료 실체로 쓰이기에 충분한데 체력은 어느 새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매일 그 날 눈금 만큼씩 늙어가고 있었을 것인데 이즈음 들어서는 하루하루 늙음 이란 미지의 땅을 향한 쾌속정을 탄 듯 하다. 보람으로 남겨질 가치 있는 것은 눈에 띠이질 않는데 아쉬움과 잃은 것들만 두드러져 보인다. 소멸의 극점이 의욕을 짓궂게 앗아 가고 보기 싫은 것들만 늘어 간다. 고집과 집착, 아집과 자존심이 꼿꼿이 고개를 추켜 세우고있다. 버릴 것들이 늘어간다. 잃은 것들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야 할 터이라서 조용히 잠잠하게 나를 돌아본다. 자신에게 유난히 관대했던 모순을 발견하며 생애의 정직한 평가를 해본다. 그렇다. 나이 든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 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었고 좋은 유익도 있을 것이기에 그 좋은 것들을 찾아 나서 보자. 나이든 사람은 함부로 대함을 받는 일이 허다하지만 존경 받고 위로 받는 것도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 나이가 들어도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 행복 발견을 위해 열심히 용감하게 살아 내자. 살아 온 날보다 더 짧을 수 밖에 없는 남은 날들을 옹골차게 살아내자. 나이 만큼 열심히 살아왔고 노력했기에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던가. 생의 긴 무대는 폭죽처럼 터지는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은은하게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여정이었다. 꾸준함, 변함없음을 지켜내며 치사하게 보여 주기식 오만을 범하지 않으며 주어진 깜냥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쳐왔다. 해 묵은 것, 목숨처럼 사랑했던 인연도, 떠나 보낸 세월도, 남겨진 여정에 실려 아쉬움 없이 함께 흘러가자 한다.
내리막 길에서 만난 나이는 단지 숫자로만 남기라고 노년의 아낙에게 타이른다. 아침이 열리는 시간, 하루를 다한 시간이면 주기도문을 올려 드리듯 나직한 다짐을 속삭인다. 갑작스레 지혜와 덕을 쌓아온 것으로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는 불가능하기에 불가능을 넘어서는 길은 마음을 가다듬는 길 밖에 없음이 동기화 되기를 마음으로 정하면서. 세월과 맞선 생애의 껍질이 단단해 지면서 본능적으로 나침반 역할을 해온 셈이 된다. 경륜이 만들어낸 깊은 울림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운 가치를 남기고 싶은데 가까운 날, 아무도 동행할 수 없는 길을 만나러 가야 한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도록 남는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이라 했는데 내리막 길에서 만난 나이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 한다. 순간순간 행복을 지향하는 마음의 푸름을 잃지 않는다면 남은 날들도 푸름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답은 없다고들 하지만. 내리막 길에서 만난 나이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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