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새벽 기도 모임에 참여하고는 곧바로 우리 마을에 있는 공원을 찾는 일이 일과의 시작이 되곤 한다. 이 마을로 옮겨 오면서부터 찾기 시작한 공원인데 어느새 13년지기가 되었다. 이웃을 만나게 되고 단골 산책객들 과도 반가운 인사들을 나누게 된다. 한동안 뵙지 못한 분들은 안부를 서로 묻기도 하고 반가움을 교류하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 새벽 산책길은 하루가 열리는 이른 시간이라 만남, 인연의 시작을 떠올리게 되지만, 노을이 비끼는 산책길에선 살아 온 날들이 직조해 놓은 무늬들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며 생을 반추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동행하는 우리집 할배는 공원 산책 코스를 꾸준히 조깅 해오셨고 필자는 파비리온 주변을 서성대며 걷는 시늉만 하다가 무릎과 허리 비명을 달래려 곧장 의자에 앉게 된다. 새벽 일기를 쓰기도 하고 떠오르는 단상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푸른 새벽이 열리고 천지가 환해 지고 여름 끝물 갈라 쇼 같은 볕 살이 다사롭기 그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류는 지구라는 기적 같은 이 행성에서 꿈 꾸듯 생을 이어간다. 태어나고 성장해가면서 사랑을 만나게 되고 보금자리를 꾸리고 사랑의 결실로 자녀 출생 기쁨을 누려가며 인류 역사는 이어져 오고 있는 터이라서 모든 인류에게는 제 각각 출생 드라마가 있게 된다. 생명의 잉태에서부터 한계 없는 엄마의 희생이 따른다. 상상 못할 아픔과 바닥 없는 공포까지 답습해가면서, 아기를 향한 목숨 거는 모성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고 양육 받으며 비로소 인류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임신, 출산. 양육, 성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 만은 않음 이요, 때로는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이렇듯 감동 드라마를 만들며 태어나고 성장해 왔기에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해서 세상살이에 지치고 불시의 시련에 영육이 흔들릴 때면 나만의 출생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는 것이다. 겪기 힘든 단련이나 고비의 격랑을 넘어설 수 있는 발상의 발돋움에 도움이 되는 디딤 틀이 되어주었다는 간언을 드리고 싶어서 이다.
옛 어른들께서 살아가는 이치와 도리를 지혜로 지적해준 것으로 ‘삶이란 마치 길을 재촉하는 마부와 같다’ 했다. 출발 지점에서 마지막 종착지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 우리네 둥에 짐짝을 잔뜩 지우고는 쉴 새 없이 채찍질하며 길을 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와중에 같은 길 위에서 동행을 만나기도 하고 연인을 만나게도 되고, 어깨 동무를 하며 멀고 먼 인생 여정을 걸어가게도 된다. 하지만 인생에서 끝까지 함께 더불어 나란히 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해서 사람은 혼자서도 길을 가는 법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때론 삶의 대장정에서 크고 작은 파티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손수 마련하게도 된다. 화려한 불꽃과 아름다운 무대에 활기찬 음악과 춤이 곁들여지는 근사한 시간을 보내게도 되지만 파티가 끝나면 홀로 어두운 밤길 따라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인생이란 누구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 외로운 길을 걸어야 하는 시간을 훨씬 많이 보내게 된다. 모태에서부터 혼자였고 둘이 함께 하자고 사랑을 나누고 언약을 했다지만 살다 보면 혼자 버려져 있을 때가 많았기에 아예 혼자라는 설정이 이미 되어 있었던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시인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겠 지만. 외로움 동기 제공자를 추궁하기 보다 마음은 이미 홀로서기에 몰두해 있기에, 필연의 아픔은 죽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는 시퍼런 멍자국을 어루만지며 남은 날을 살아가기로 작정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이러 들, 저러 들 어떠 하리 로 받아들이며 생을 살아가게 된다. 주어진 끝날까지.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시간을 첫 단추로 삼으며 곧고 반듯함으로 소박한 하루이기를 소망 드린다. 새벽 첫 시간을 기도로 올려 드리며 새벽 일기로 다시금 다짐하는 것으로 소중한 삶의 여정 앞에 겸허하게 가다듬어 가려 한다. 새벽일기에 남겨진 소망이 작은 자의 소명으로 심어 지기를 간구 드린다. 새벽 빛이 은혜로 내리 우는 한 없이 넓은 하늘 품 속에 안기고 싶은데 발돋움 할 수 없어 그저 올려다 볼 뿐이다.
새벽이 열리는 신비는 어둠을 밀어내고 서서히 밝음을 불러들이는 거룩한 감동이다. 삶 속에 밀려드는 어떠한 힘든 고난도 깊은 밤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면 새롭게 열리는 새벽으로 하여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붙들 수 있다는 용기를 붙들게 해준다. 새벽은 인류에게 기회를 베풀어 주는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이룸을 예지해주는 기대요 꿈이요 등불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의 현실이 수고롭고 어렵고 고단한 고난 속에 있더라도 어두운 밤을 견디다 보면 여명을 품은 새벽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두자. 손에 손을 붙잡으며 새벽을 기다리자.
남빛 푸른 새벽 빛 너머로 빛살 같은 소망이 수목 사이로 수줍게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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