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숙모의 부음을 일 년이 지난 후에야 들었다. 거의 스무 살 나이 차이가 있는 숙모와 나는 같은 암을 경험한 사이였다. 물론 젊은 내가 먼저 암 투병을 겪었다. 숙모의 임종 소식을 제때에 전해 듣지 못한 것도 그 까닭이었다. 같은 암 환자의 죽음에서 내가 받을 충격을 걱정한 집안 식구들의 배려였다. 정말 그랬다.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무척 놀랐다. 투병의 기억을 잊고 즐겁게 살던 나는 다시 두려움을 느꼈고, 내 삶의 마지막을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
부음은 누구에게나 연민의 마음을 앞서게 하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모의 소식을 듣는 순간 내게도 같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인을 향한 애석함 보다 먼저 내 안위만을 걱정하다니, 세상에 이토록 뻔뻔한 기만이 또 있을까? 숙모와 나는 집안 행사를 제외하면 왕래가 전혀 없었다. 예전에 내가 숙모를 만났던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혈연관계로 생긴 집안 행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훗날 숙모와 나 사이에 '암'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기지 없었더라면 어쩌면 남보다 더 서먹한 사이로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썩은 줄을 잡고 절벽에 매달려 있는 심정이었다. 그 불안과 공포의 마음을 내 보일 수 있었던 사람은 의사였던 삼촌이었다. 따뜻하게 용기를 주는 삼촌 옆에서 숙모는 “그깟 암이 뭐 그리 큰일이냐며 수술하고 치료받으면 될 일”이라며 날 선 말로 내 가슴에 칼자국을 그어 댔다. 그로부터 십 년 후, 숙모가 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숙모는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노령의 숙모가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예전에 매몰찬 훈수로 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었다는 것도 이유였다.
극한 상황에서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생명과 관계가 있을 때, 나만의 답을 찾아내고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나는 이미 경험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인지 아는 분이었던 같다. 치료 거부라는 숙모의 결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숙모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무기력한 삶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병마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아내라고 젊은 조카를 채찍질을 하셨던 것 같다.
목적지를 향해 낯선 길을 따라 가는 여행자처럼 누구든 자신만의 인생길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으로 생을 소비하기보다는 삶의 마무리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치료를 포기한 숙모처럼 나도 할 수 있을까? 십 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부음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가슴이 먹먹히 진다. 투병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라 다시 그런 일을 겪을까 봐 두렵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할까?
“삶이란 결국엔 다 잃어버릴 것이 확실한데도 끝까지 싸우는 전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호된 전투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사랑이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새로운 인생계획을 세울 때마다 “죽기 전에 해 봐야지” 하며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었다. 누구나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사람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제 인생의 마지막을 나만의 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려움을 수용하고 마지막 날까지 죽음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았을 숙모가 존경스럽다.
숙모 인생의 마지막 십 년은 삼촌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도는 일이었다. 지인들을 만나 추억을 주고받으면서 지내다가 자신의 소원대로 평온하게 자는 듯 임종을 맞았다고 했다. 나는 과연 죽음 앞에서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타인의 생애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가 선택한 해답을 미화시키면서도, 여전히 백세까지 살고 싶은 심보로 이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아뿔싸, 참 아이러니컬한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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