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유학 왔던 조카가 삼 년 동안 사귄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먼저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에게 알렸다. 학위를 받고 나면 귀국할 것으로 기대했던 부친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혼 계획이 틀어졌다.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허락을 받고 결혼하자는 조카의 말에 상대방도 마지못해 동의하는 것 같았다.
결혼허락이 점점 지연되는 동안, 교제하던 중에 몰랐던 사실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알려 주었던 생활환경이나 가족력 및 학력 등 많은 것들이 거짓이었다. 하지만,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조카는 어린 나이에 이민 와서 힘들게 사느라 생긴 열등감 때문이라며 상대를 감싸주었다. 자신 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주위의 만류를 꿋꿋이 버텨내는 조카 덕분에 결혼전선에는 변함이 없는 듯했다.
한국에서 생활비 송금을 끊어 버렸다. 그때까지 안정된 직업이 없던 조카가 생활에 쫓기기 시작하자, 상대의 본심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혼을 통해 금전적 풍요로움을 좇으려는 그의 허영심과 낭비벽을 뒤늦게 깨달은 조카는 결혼을 조금 미루자고 했다. 그러자 상대가 모습을 감춰버렸다. 갑자기 사라진 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 후 조카는 결혼이 깨진 것을 슬퍼하기 보다는, 상대를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자신의 무지를 자책하느라 한동안 침울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할 때, 그의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이름, 나이, 직업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습관과 말투를 아는 것일까? 사실 그가 깊은 밤 혼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작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내 생각과 내 느낌을 믿는 것이니 결국 내가 만든 평가와 편견을 믿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 년 전에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테네시 주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독거 노인이 도움을 청했다. 먼 거리라 안전 운전을 고려해서 택시를 불렀다. 그의 택시회사 이름에 걸맞게 번개처럼 달려온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대 여섯 시간의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그의 형편을 알게 되었다. 노모와 두 딸을 돌보는 이혼남이라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해서 팁을 두둑하게 주었다. 며칠 후 그가 모친이 만든 깻잎 장아찌와 고추 조림을 들고 찾아왔고, 그렇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창백한 낯빛으로 그가 찾아왔다.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삼천불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하필 나를 택했을까 의아했지만, 그의 노모와 엄마 없는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에 체크를 써 주었고, 그 후 그는 사라졌다. 그가 노름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곳은 단골 미용실이었다. 카운터 위에 있는 택시 명함들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번개택시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원장님도 당했어요?” 되물었다. “안다”라는 것은 결국 내가 상대에게 부여한 환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삼천불에 배운 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가끔 나는 나 자신조차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내 능숙함에 스스로 놀랄 때도 있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로 나의 낯선 면을 알게 될 때 신기해서 혼자 웃기도 한다. 가수 김국환이 부른 '타타타'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랫말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네가 나를 모르는 데/난들 너를 알겠느냐/한 치 앞도 모두 몰라/다 안다면 재미없지/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그런 거지.”
노래 마지막 부분에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나오는 것 때문에 한 번만 들어도 쉽게 기억한다. 노래 제목인 '타타타'는 ‘여여(如如)’라는 불교용어다. 여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는 것, 즉 사사로운 의견이나 개인의 판단력에 상관없이 그 실체를 왜곡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맞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침묵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다. 그가 가진 정보나 눈에 보이는 환경을 통해 가늠하면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동행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곁의 사람들을 조금 더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섣불리 규정하지 않으며, 늘 열린 마음으로. 타 타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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