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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세월 속의 아버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7-11 08:33:52

행복한아침, 시인, 수필가,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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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자(시인 수필가)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 들어서면 아버지 생신을 맞게 된다.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을 나눈 지 어언 예순 두 해를 넘겨오면서 해 마다 이방에서 홀로 아버지를 떠올리며 조용한 묵상에  젖어 즐겨 부르시던 김 삿갓 노래를 불러드린다. 40여년 동안 이국에서 맞게 되는 아버지 생신이 되면 그리운 아버지를 새롭듯 만나 뵙곤 한다. 먼 바람소리 여운처럼 해마다 다른 색조로, 때로는 고즈넉한 분위기로, 가끔은 돋보이는 음조로 마음을 두드린다. 여식의 삶에 배경이 되어 오신 아버지 생전 모습이 어레인지 되면서 해마다 다른 추억의 영상을 안고 찾아 오신다. 떠나 신지 몇 년 동안은 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고 울상이 된 친구를 보며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른다. 아버지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달려 가기도 하고, 군중 속에서 옆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고. 문득문득 음성도 듣게 되고,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들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세월 속에서 예측 없이 만나지곤 하는 내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 시켜 주신 든든한 기둥이셨고 비빌 언덕이셨다. 늦은 결혼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첫 자녀로 맏딸이 태어나던 날 ‘집 안에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하시며 그렇게 기뻐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와 나는 이렇 듯 서로의 선물이 되는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값진 선물임을 마음으로 눈짓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부녀관계를 이어 왔다. 영민함이나 재치가 뒤쳐지더라도 걸림돌이 될 수 없었고, 강가로나, 바닷가로 나가 곧잘 환호하기를 즐겨하는 멋쩍은 딸과 동행해주시는 일을 마다 않으신 감성이 남다르신 분이셨다. 풀밭에서 토끼풀을 귀에 꽂아 주시고 꽃 반지에 화관이며 목걸이도 만들어 주셨다. 맏이가 딸이라는 시대적 불편한 자리매김에서 할아버지에게 반론을 들이대지 않으시면서도 은근히 옹위해 주셨다. 청 보리 잎 줄기로 풀피리를 부시며 풀피리 부는 법을 애써 가르치려 하셨던 아버지 바램을 끝내 이루어 드리지 못 했던 송구함이 청 보리 밭 풍경이 만나질 때면 그리움이 살포시 일렁이곤 한다. 내성적 소녀로 아버지 기쁨에 보탬이 되지 못했던 서글픈 추억 탓에 그 때로 돌아가 아버지 팔짱을 끼고 조르기도 하는 살가운 딸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빛 바랜 가족 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영화 ‘ MOBY DICK ’ 그레고리 팩으로 저장되어 계신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광란의 세월에 휘말리시고 그 소용돌이를 헤쳐 오신 모습이 맏이의 가슴엔 또렷한 영상으로 진하고 깊은 낙인으로 선명히 남아있다. 가문의 기둥으로 친족의 젖줄이셨던 아버지의 사업이 군사 혁명 회오리가 불어 닥친 시대적 불운에 부대끼시면서 갑자기 안게 된 아버지의 고뇌와 한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리기만 했던 맏이는 아버지 온실에서 자란 철부지로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아물지 않은 환부가 되어 깊은 찔림이 덧나는 날엔 고스란히 밤을 밝히곤 한다. 세상을 떠나시던 날은 사방을 헤아려 보아도, 돌아보아도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안일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은 공간에 익숙해 지기까지. 마음을 가다듬으며 몸부림 하며 허공을 휘 저어가며 손에 잡히는 시간들을 기록해 두었던 조각 글들이 상자 가득이다. 삶의 우선권은 늘 자식이셨다. 자신의 공간을 꾸밀 세트나 소품은 언제나 낡은 것이었고 빛 바랜 것으로 자신을 위한 투자는 불문율처럼 인색하셨다. 아버지께서 묵묵히 견디어 오신 삶의 무게를 은발이 되어서야 헤아릴 수 있는 여식의 모자람이 빚은 자책의 나부낌이 펄럭이고 있다.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대로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아버지 

딸로서 기 죽지 않으며, 큰 자리에 앉은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생의 해넘이에 당도한 지금, 떠나 신지 아득한 시간을 보내 버린 아버지를 생각하면 목이 매이거나 저며오는 우수보다 깊은 물밑 같은 일렁임으로 다가온다. 울창한 숲의 풍요로움과 고고한 기품을 지니셨던 아버지의 후광이 빛 바랜 인화지에 담겨 은은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명예와 부, 권력, 세상을 아는 것에도 빈틈이 없으셨고 나누고 나누어도 늘 채워 짐을 몸소 보여주셨던 한없이 선량하신 아버지이셨다. 자신을 위한 일에는 욕심이 없으신 분으로 나눔으로 이어진 나눔의 진리를 전해 오신 발자국들이 지금의 우리 남매를 있게 하셨고 나눔의 기쁨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기에 지금껏 아버지 숲에서 우리를 호흡하게 하시고 삶의 열정을 공급받게 하시어 이룸을 향해가는 길잡이가 되어 주시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떠나 신지 반세기하고도 10년을 넘겼지만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음이라서 마음으로 모시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동행할 수 밖에 없음이다. 나이 들어버린 은발의 여식은 문득문득 아버지가 뵙고 싶은 날들이 잦아진다. 간호라도 할 수 있다면,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라도 공원을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아버지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세월 흔적을 덮고 있던 내 아버지 모습을 조심스레 더듬어 보는 길목마다 아버지 숲은 여전히 울창하고 바람이 옮겨 다니고 오붓한 숲길이 정갈하게 뻗어 있다. 세월 손을 다정하게 잡고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따스한 유훈을 안고 남은 날들을 한걸음씩 옮기며 걸어 가리라. 몇 번이나 남았을 지 모르는 아버지 생신을 해마다 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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