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시시각각 우리를 공격하는 온갖 걱정거리들을 물리치는 또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넉넉하게 웃으며 사소한 문제를 지나 치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업신 여기고 잊어버려야 할 사소한 문제로 마음을 구렁텅이에 몰아넣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사소한 문제에 온 마음을 솟으며 살기에는 너무나 짧습니다.
예를 들면 법정에서 처리하는 형사 사건의 대부분은 사소한 문제들로 부터 시작됩니다. 술자리에서의 시비. 친구들끼리 말다툼. 모욕적인 언사. 경망스러운 말투와 행동.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격투와 살인이 벌어집니다. 사실 처음부터 심성이 바쁘거나 잔인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는 언제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가? 그것은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될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품어서는 안 될 허영심 등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커다란 불행을 겪으면서도 사소한 문제 때문에 애태우는 미련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국에 하리 배인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형이 확정되어 단두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바로 전 그는 마지막 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언이 영 뜻밖이었습니다.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덜미에 있는 종기를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코 웃음을 쳤습니다.
앙드레 모로이는 사소함에 대하여 <뉴스위크>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업신여기고 잊어버려야 할 사소한 문제로 가끔씩 마음을 애태우곤 합니다. 인간은 앞으로 몇십 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모두 잊어버릴 불쾌한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함으로써 다시 못 올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가치 있는 행동과 감정에 또는 위대한 사랑과 진정한 애정과 영원한 사업에 바치기로 합시다.
작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지 않습니까?” 사소한 문제에서 오는 고통을 피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유쾌하게 돌리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날파리 정도는 웃으면서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소설가 호머 크로이는 뉴욕의 오래된 어느 아파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낡은 라디에이터에서 들려오는 덜덜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원고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책상에 앉으면 스팀이 뿜어 나오는 소리에 이상하게 마음까지 흔들리는 듯한 느낌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캠프를 떠났습니다. 야영을 하면서 모닥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호머 크로이는 활활 피어오르는 불꽃 속에서 큰 나무 가지가 후드득 후드득 거리며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아파트에서 신경을 거스르던 라디에이터 소리와 비슷하였습니다. 왜 이 소리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경쾌한 소리였습니다. 밤의 낭만을 자극하고 사랑을 일깨우는 그 소리…. 호머 크로이는 잠시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사소한 것에 흔들리고 짜증내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후 아파트에 돌아온 호머 크로이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라디에이터 소리에 초연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뭇가지가 타는 소리였으며 스쳐 지나가는 숱한 소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소리 때문에 소설가의 영감이 파괴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걱정 거리들도 대개는 그렇습니다. 미칠 것 같이 화가 나고 피가 들끓지만 그런 감정은 과장된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면 아마도 흘러가는 시냇물에 부딪치는 자갈 소리처럼 평안하게 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