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6.25 주기가 돌아오면 조국 수호에 희생된 우리들의 젊은 용사들과 유엔군으로 참전한 영웅들이 오랜 세월을 넘겼는데도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곤 한다. 단편적으로 아련하게 떠오르던 생각들이 이 땅으로 건너와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더욱 절실하게 각인 된 듯 다가온다. 이 곳 미국 땅에서 낯선 이국 만리 작은 나라 대한 민국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신 그분들이 남긴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을 치르신 참전 용사들의 미담들이 역력하게 떠오른다. 세월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네 한국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음에 마음 아픈 안타까움이 일어 몇 분만이라도 미담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 분들의 업적과 바람직하게 계승 되어야 할 정신과 위대함을 기려보려 한다. 한국전 발발 75주년이다. 더 늦기 전에 평화 수호를 위해 자유를 지켜낸 분들의 감동적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모아져서 후대들에게 전수되어 지기를 바램 해본다.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설립에 크나큰 역할을 하신 영웅 윌리엄 웨버 대령의 업적을 새겨 보려 한다. 전투 중 오른팔을 잃고 후송 중 포탄을 맞으면서 같은 날, 오른 다리 마저 잃고도 20년을 넘도록 군인으로 복무하시다가 2022년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자유를 가진 사람은 자유를 잃게 된 이들의 자유를 지켜줄 의무가 있고, 참전은 이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으로, 한쪽 팔다리가 없는 것보다 한반도 분단이 더 가슴 아프다”고 하시었다. “ 이제 너희는 북쪽에 자유를 전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남기셨다. 웨버 대령같이 한미 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시는 분들 뿐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가족과 멀어진 이들도 한국전 참전은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훈장감으로 길이 칭송 받아야 할 분들이다. 이들 스스로 “자유를 권리 아닌 의무로 싸운 멸종 위기 종족”이라는 소중한 말들을 남기셨다. 고귀하고 존엄한 마음과 존귀한 정신을 높이 기리며 후대에까지 새겨둘 소중한 말들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안치 되신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겨질 것이다.
낙동강 방어전을 지휘했던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의 사망 표지석은 서울 도봉 역 인근 에서 만날 수 있다. 북한군의 끈질긴 공세에서 최후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3개 월 후인 12월 23일 그가 탄 지프가 무면허 한국인의 과속으로 워커사령관이 탄 트럭과 충돌하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의정부 최전선을 지키던 중대장인 아들에게 은성 무공 훈장을 직접 달아주려 했었고 4성장군 승진이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후에 최연소 대장에 진급하면서 미국에서 함께 대장 대열에 오른 유일한 부자가 되었다. 인천 상륙 작전을 있게 한 낙동강 방어전선 사수는 아군이 버티면서 북한군 주력을 묶어두지 않았다 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워커 지휘관은 “버티지 못하면 죽으라”군인 답게 싸우다 죽으라는 무자비한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미의회로부터 중대 경고를 받을 만큼 북한군을 끝까지 저지하는 군인으로 남겠다는 비장함을 보여주었다. 낙동강 방어전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신화를 만들었다, 워커장군 못지않게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영웅이신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은 한국인에게 속아 포로로 잡혀 가면서도 장군 신분을 숨겨온 비화가 있다.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대화재로 3만명 이재민이 발생했다. 파란 눈의 성자로 알려 진 제2 군수사령관 리처드 위트컴 장군은 이재민들에게 음식물을 나누기 위해 군수 물자 전용이라는 죄목으로 워싱턴 청문회 소환되면서 “전쟁은 총칼 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말은 남기셨다. 전역 후에 한국에 남아 한미 재단을 설립하고 전쟁고아 돌봄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아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보육 원을 방문했다가 원장인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별세 하시면서 유언을 남기셨다. “나를 한국 땅에 묻어달라,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찾아 고향에 보내 달라” 는 것이었다. 남겨진 부인은 위트컴 희망재단을 설립해 유해 봉환에 힘쓰다가 부산 유엔 기념공원 남편 곁에 잠들어 계신다. 한국 정부는 장군 별세 40주기가 되어서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하면서 그 숭고한 사랑과 희생에 감사를 표했다.
매년 유월이 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우리에게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고국 뿐 아니라 재외 온 국민이 함께 하나되어 마음을 모으는 진정한 하나 됨이 급선무 일 것이다. 6.25 전쟁을 직접 겪었던 국민이 많이 남지 않았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국민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전쟁도 통일도 그 개념이 바뀌고 있어 6월이 가기전에 해답을 얻고 싶은데 묻고 또 질문을 해도 해답을 얻기가 힘들다. “왜 이토록 아픈 죄악의 역사가 만들어 졌는지, 그 많은 희생의 죄 값은 누가 치루며 감당해야 하는 지” 비극을 사죄해야 할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6.25 전란의 잊혀진 영웅들이 남기신 존엄한 업적들이 지금껏 마음의 울림이 되어 6월 하늘로 번져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