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명저(名著),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No Room For Small Dreams>의 저자, 시몬 페레스는 <기억(Memory)>과 <상상력(Imagination)>의 분기점에 직면할 때, 상상력의 정점에서 일을 해결하려고 평생을 노력하면서 “나는 <상상력(Imagination)>의 정점에서 가능성과 잠재력이 그 기능을 발휘함을 알았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기억(Memory)>은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앞서고, <상상력(Imagination)>은 미래에 대한 설계도로 우선 현실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한 꿈>처럼 보이지만 민첩하고 창의적인 자세로 일관함으로써 반드시 꿈이 아름답게 결실하게 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 700년 이전의 선지자 이사야는 ‘과거’와 ‘미래’를 <기억(Memory)>과 <상상력(Imagination)>이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꿰뚫어 보는 예지력의 혜안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 패러다임으로 해부한 이사야는 과거에 대한 기억인 <홍해바다의 기적>과 미래의 상상력인 <광야 40년의 여정 가운데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비교할 때, 과거의 기억에만 머물고 있는 <홍해바다의 기적>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광야의 기적>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항상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Imagination)>의 차원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확신 있게 선포한 것입니다(사 43:17-18). 광야와 사막은 길을 내고 강을 내기에 가장 불리한 곳입니다. 이것은 마치 과거의 기억에만 머무는 과거지향적 사람에게는 편협(偏狹)한 <냉소주의(冷笑主義, Cynicism)>가 긍정의 <낙관론(樂觀論, Optimism)>을 가지고 창의적 미래를 펼쳐 나갈 발목을 붙잡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창의적인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것을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므로 결국 낙관주의의 희망의 날개를 꺾고 마는 것입니다.
시몬 페레스의 <기억(Memory)>의 영역을 뛰어넘는 <상상력(Imagination)>은 오늘날 21세기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이란 전쟁(이이전쟁)에서 <낙관론(樂觀論, Optimism)>의 용기로 전진해가는 승리의 모습으로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위기, 어떤 절망의 상황 앞에서도,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과거의 기억에만 빠져 실망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는 <낙관주의(樂觀主義, Optimism)>로 현실타개와 미래개척으로 진취적인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의 용장, 다윗과도 같은 <상상력Imagination)의 낙관론(樂觀論, Optimism)>을 펼쳐 나갔습니다. 시몬 페레스의 잠언입니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둘 다 결국은 죽지만, 낙관론자가 희망적이고 행복한 사람들을 이끄는 동안 비관론자는 부정적이고 짓밟힌 존재들에게 인생을 낭비한다.” 현하, <기억(Memory)>의 반의어(反意語)는 <망각(Oblivion)>이 아닙니다. <기억(Memory)>의 반의어(反意語)는 <상상력(Imagination)>입니다. 기억이 이미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귀지대(回歸地帶, Regression)>라면, 상상력은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을 미리 가 보는 <미래로의 전진답사(前進踏査, Progress)>입니다.
현하,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이이전쟁이 시몬 페레스의 영감 넘치는 <상상력>과 이사야의 예언자적 선견지명의 통찰력이 <낙관론의 쾌거>로 당당하게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낙관주의는 전진의 본질입니다. 상상력은 미래의 본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과거의 기억에만 전전긍긍하여 편협하게 얽매인 삶을 살기보다 미래의 상상력으로 태연자약하여 당당하게 진취적인 삶을 살게 하옵소서. 현하의 현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리라”고 말씀으로 보장하시는 창의적 미래의 상상력으로 피폐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진실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참 승리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