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한지지가 어느덧 서른해가 가까워진다. 어지간히 무던 해질 만도 한데 자책감이 추억의 걸음을 내딛을 적마다 기회를 얻은 듯 내재해 있었던 북받쳐 오르는 상실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렇듯 망연 스러운 절망감 속에서 바닥 모를 걷잡을 수 없는 애타는 동경과 사모에 휩싸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세월이 흐른다고 그리움 회환은 회복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켜켜이 쌓인 회오를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내 생애의 유일한 언덕이었던 내 어머님께 그리움이 농익어버린 사모곡을 풀어보려 한다. 언제 떠올려도 보드랍고 따뜻하고 포근해 지는 말, 나직하게 ‘엄마’ 하고 불러보면 아련한 유년이 떠오르면서 가슴 저변이 촉촉해 지는 말. 엄마라는 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희생적 사랑, 끝없는 모정이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분주하셨다. 자신을 챙기는 모습이 아닌 주변을 돌보고 베푸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신 모습이셨다. 셋째 며느리 자리에서 아버지의 5남매 가솔을 맏이처럼 숨가쁠 정도의 힘겨움을 혼자 감당하시며, 간호사로 지내오신 경력 탓에 이웃 분들의 크고 작은 의료 문제를 해결해 오셨다. 타박상 상비약에서부터 소화제까지 정비된 방에서는 늘 병원 냄새가 났었다. 이웃 아줌마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궁중요리까지 다양한 식재료들이 즐비해 있었던 부엌은 시대적 신여성인 어머니 모습의 일부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이렇듯 동분서주 분주하셨던 엄마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려보고 싶었던 어린 여자 아이는 동생들과 놀아 주고 돌보기도 하면서 마음 구석에 자리해버린 작은 구멍은 머리에 서리를 앉고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유년기에 받아야 할 사랑, 사춘기에 받아야 할 사랑, 청년기에 받아야 할 위로의 장은 추억의 걸음에 묻혀버린 것 같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밤, 유난히 햇살이 눈부신 날이면 아련한 영상처럼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들이 생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면서 엄마를 향한 사모곡에 오점이라도 남기는 건 아닌지 초조함이 엿보인다. 은발이 되고서야 돌보지 못해서 사랑이 없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내게도 사랑하는 네 딸이 있고, 딸들에게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떠오를 때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닌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마음 아파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는 고백이 마음 저변에 숨겨져 있다. 결혼한 딸들의 어려움을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지는 못했어도 늘 딸들을 바라보며 기도의 줄을 잡고 있었음을. 내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이 나를 지켜 주셨기에 자식을 돌볼 수 있었음을. ‘일일이 다 해줄 수 없었기에 그저 가슴 저민 울음으로 기도의 무릎을 꿇어왔던 것을. 해서 내 어머니의 사랑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셨음을 자각하게 되는 눈 뜨임이 노구의 아낙에게 새로운 가치로 다가온다.
가슴 속에 숨겨진 사랑까지 한 없이 퍼부어주는 애달픈 사랑의 귀하고 귀한 모습들을, 예전에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딸들의 깊은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시작된 어설픈 엄마의 길이 실수와 후회와 안타까움만 쌓여 있는 부끄러운 흔적만 보이는데 사랑하는 딸들은 일찌감치 어른이 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듯 든든한 모습으로 가정을 이루고 생애의 길을 지혜와 통찰력으로 불투명한 미래까지도 현명하게 다스릴 줄 아는 소중한 인생 비결을 이미 깨우친 듯 언제나 믿음직하게 현모양처의 자리를 지켜내 왔음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부모의 울타리를 넘어 자신만의 세계 구축에도 게으르지 않으며 아내의 자리까지 훌륭하게 바람직하게 잘 지켜내 왔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빈틈없는 수고로 엄마의 마음을 잘 심어온 딸들에게 ‘Happy Mother’s Day’카드를 띄워 보냈다. 사랑의 울타리를 다듬어온 딸내 가족들에게 ‘BRAVO’ 환호를 힘껏 외쳐 본다.
‘MOMMY’라는 호칭이 품은 어원은 늘 그리움을 자아내고 따스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엄마라는 어의는 자식과 함께 여야만 더 빛나는 말이다. 언뜻 지나버린 겨를 사이에 은발이 되어버린 할머니에게도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어머니께서 계셨기에 가능했다는 것 까지도 소소한 일상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추어져 가고 있다. 비단처럼 보드라운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께 다하지 못한 회한의 여한이 5월 바람결을 타고 노구 곁을 휘돌아 가고있다.
어머니의 따뜻함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익혀가며 남은 날들을 채워가고 싶다. 찬란한 5월의 햇살처럼, 환한 보름달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붙들어 주셨던 온기의 근원이 내 어머님이셨기에 힘겨움이 슬픔으로 차 올라 당황스러웠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겨울을 지나 듯 혹독한 시련의 날이 많았지만 이젠 5월의 따스함 곁으로 다가서려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은 더욱이 선명하게 새겨진다. 어머니는 저에게 최상의 최고의 어머니 이셨음을 고백 드리고 싶은데…. 어머니 발자국에 비해 너무 작고 초라한 발이라서 아무리 뛰어도 닿지 못하고, 내 딸들 과의 추억의 발걸음에도 그 젊음에 까마득하니 닿지 못하는 노년의 아낙이 되고 말았다. 내 어머니처럼 따뜻하고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엄마의 길을 걷고 있는 딸내들에게 5월 훈풍처럼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는 5월이다.